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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텔리비전」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컬러·텔리비전」의 시험방영 결점은 한국인의 생활에 하나의 충격을 안겨줄 만하다. 기술사의 측면에서, 풍속사와 미적 감각의 차원에서, 그리고 경제와 사회학적인 관점에서,『안방속의 색채혁명』이 주는 의미는 다양하고도 심층적이다.
이 충격의 가치에 대해서는 사람에 따라 긍정적인 것과 회의적인 것의 양론이 있겠으나 어쨌든 기술의 혁명이나 보급이란 윈래 좋건 싫건 불가피하게 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론 적극적인 자세로 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히려 세계적인 추세나 한국의 사회발전 진도에 비춰 본다면「80년의 색채혁명」이란 심히 때늦은 감이 짙다.
이웃 일본만 해도 국민소득 5백「달러」때, 그리고 자유중국은 4백「달러」때 벌써「컬러」를 도입하였다. 일본에선 이미 수상기 총 수에 대한「컬러」수장기의 비율이 78년 현재90%에 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혁명은 인류에게 전혀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다.「구텐베르크」의 활자혁명, 「와트」의 증기 기관 발명, 「존·베어드」의「텔리비전」발명은 모두 인류의 생활자체를 질량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 환경의 변화는 다시 인간자신의 감각을 자극해 보다 정교하고 팽창된 시야를 넓혀준다.
이 이치는 색채의 혁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색깔이란 본래 인간이 누리는 천혜의 특권이며 어쩌면 자연계의 미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눈은 파장 3백80「밀리크론」으로부터 7백80「밀리크론」까지의 가연 광선만을 색깔로 바꾸어 볼 수가 있다. 그 이상의 파장을 가진 광선은 아무리 우려 눈에 비쳐와도 색깔로 재현되지가 않는다. 말하자면 인간 지력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래서 우리가 보는 자연계와 물상계의 색깔은 색깔의 모든 가능성이라기 보다는 그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컬러·텔리비전」의 등장은 인간 시력의 한계를 넘어선 이미지의 세계를 돌연 전면적으로 드러내 주는 셈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색채에의 경험은 불가피하게 새로운 물결들을 파생시키고 말 것이다. 흰색 아니면 까만색이나 감색·회색만을 즐겨입는 한국인의 복식은 아마도 더욱 다채로와 질 것이다. 실내의 배색도 달라지고 사람들의 감각도보다 개방적이 될 것이다. 심지어는 노인들의 옷 색깔도 한층 젊어지게 마련이고, 이러한 왕성한 색채감각은 자연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여 경제전반에 유형무형의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다.
그러나 이 향상된「수단」은 그만큼 향상된「아이디어」가 있을 때만 제 구실을 다할수 있다.「노하우」를 보유한「메이커」는 그나름대로 기술자체의 향상과 보완에 힘써야 하고 방송은 방송대로「프로그램」의 질적 향상이란 커다란 부채를 져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의「텔리비전」방송은 흑백의 안일한 공간에 안주하여 비교적「스테레오·타임」으로「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종래의 흑백「프로」 에 색깔만 그대로 입혀 놓는 듯한 작품을 만들어내선 곤란하다.
대중예술의 수준 향상은 물론 작품이나「프로」전체가 색채시대에 적합한 생동감과 「스케일」을 발휘해야 한다.
전자 사학의 첨단「컬러·텔리비전」의 한국 원년을 맞아, 그 폭발적인 수단을 선용할 수 있는 한국인의 능력에 커다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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