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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서울에서 '유레카' 외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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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에 수학상은 없다고? 그래서 노벨상을 대신 하는 것이 ‘수학의 노벨상’이란 필즈상이다. 학교 다닐 때 수학 때문에 골치 아팠거나 아예 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에겐 불편한 진실이 있다. 수학은 수식으로 삼라만상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과학이란 사실이다. 만약 외계인과 접촉한다면 언어는 서로 불통이겠지만 같은 우주에 사는 생물끼리 수식은 통할지도 모른다.

노벨은 왜 수학상을 제외시켰을까? 여러 가지 설(說)이 있다. 뒷담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년)이 자신의 연적(戀敵)에게 상이 돌아갈까봐 수학상을 만들지 않았다는 추측을 제기됐다. 당시 스웨덴의 수학자 미타그 레플러(1846∼1927년)와 노벨은 한 여인을 두고 삼각관계에 빠졌고 이 경쟁에서 진 노벨이 ‘그 녀석에겐 주고 싶지 않아’ 수학상을 일부러 제외시켰다는 것이다.

캐나다 수학자 필즈에 의해 만들어져

 또 다른 설도 레플러와 관련이 있다. 당시 유럽엔 레플러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앙리 푸앵카레 등 수학자가 있었지만 노벨은 레플러가 자국인 스웨덴 학계에 로비를 해 먼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기 때문이란 주장이다. 레플러가 첫 노벨 수학상을 받으면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노벨상의 취지를 망칠 수 있어 수학상을 아예 만들지 않았다는 얘기다.

 훗날 많은 사람들이 그 진위를 추적했다.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노벨과 레플러가 연적 관계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해서다.

 레플러는 필즈상의 탄생과도 인연이 깊다. 존 찰스 필즈(John Charles Fields, 1863~1931년)란 캐나다 수학자는 유럽 유학 도중 레플러와 만나 친해진다. 그 인연으로 필즈는 수학에 대해 더욱 뜨거운 열정을 갖게 되고 노벨상의 권위를 갖는 국제수학상 제정이란 꿈을 품게 된다. 그러나 필즈는 건강 악화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1932년, 그의 친구들이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행동에 나섰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필즈상(Fields Medal)’이다. 필즈가 남긴 유산을 기반으로 1936년 필즈상 첫 수상자가 배출됐다.

4년마다 시상, 40세 넘으면 자격 없어

 필즈상 수상자는 4년에 한번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 ICM)에서 선출된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필즈상이 수여되는 그해 1월 1일을 기준으로 만 40세가 넘지 않은 학자에게만 수상 자격이 주어진다. 인원 제한도 있다. 한 번에 최대 4명까지 수상이 가능하다.

 영국 앤드루 와일즈 박사는 비록 은상(銀賞, 특별상)이긴 하지만 40세가 넘어 필즈상을 받은 유일한 학자다. 그는 360년의 긴 세월에 걸쳐 수많은 천재들의 도전을 뿌리쳐 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했다. 이 논문은 1995년에 발표됐는데 53년생인 와일즈 박사의 나이는 이때 42세.

 수학은 흔히 ‘천재의 학문’으로 통한다. 실제로 수학자들의 주된 업적은 대부분 40대 이전에 나온다. 1954년 필즈상을 거머쥔 프랑스의 장 피에르 세르 박사는 당시 27세였다(역대 최연소). 영국의 철학자 버틀란드 러셀은 “머리가 가장 잘 돌았던 젊은 시절엔 수학, 수학을 못하게 되자 철학, 철학을 하기 힘들어지자 정치에 입문했다”고 자신의 삶을 빗대어 표현했다.

역대 수상자 52명, 미국 12명 최다

 한국과 일본이 노벨상 수상자 수에서 1 대 18의 격차를 보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필즈상 성적은 0 대 3이다. 국제 수학올림피아드에서 늘 최정상급의 성적을 내는 우리나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스코어다.

  필즈상은 상금이 많은 상은 아니다. 평생 독신으로 산 필즈 자신이 재력가가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수학상 기금으로 내놓은 것은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4만5071달러에 불과했다. 2006년 이후 필즈상의 상금은 1만5000 캐나다 달러(약 1430만원)로 노벨상의 100분의 1 정도다. 서구의 필즈상 수상자에겐 대개 임금 인상이나 종신 교수 임명 등의 특전이 주어진다. ‘전용 주차 공간을 준다’는 특전도 있다. “이 공간은 아무개 교수의 차가 우선 주차”란 팻말이 붙어 있는 정도다. 이 정도도 배려하지 않으면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로 스카우트돼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52명의 수학자들이 수상했다. 수상자를 많이 배출한 국가는 미국(12명)·프랑스(10명)·러시아(9명)·영국(6명)·일본(3명) 순이다.

  오는 13(수)일부터 21일(목)까지 서울 세계수학자대회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여기선 어떤 천재가 필즈상 수상이란 명성을 얻을지, 우리나라 수학자가 첫 등판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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