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집회 같은 열기 호메이니 연설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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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테헤란」에서 장두성 특파원】차도가 끝나는 곳에서 1백m쯤, 복개되지 않은 하수도가 길 가운데로 뚫려있고 구멍가게가 간간이 있는 좁은 골목길을 올라가니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청년들이 길을 막고 있다. 그중 몇 명은 기관단총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혁명군 자택 경비>
아무도 계급장은 없고 앞가슴에 소총 쥔 손을 위로 치켜든 혁명군「배지」를 달고 있다. 그들이 선 골목 위에는 흰천 위에 『우상을 파괴한 분(호메이니)이 당신을 환영한다』고 쓴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다. 이것이 「이란」의 실질적 지도자요 인질문제로 1년째 미국과 만만찮게 겨루고 있는 「이맘」「호메이니」의 저택입구다.
「테헤란」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모사데그」로를 따라 10㎞쯤 간 곳에 있는 「자마란」이란 사원촌의 윗동네다. 이 길은 원이름이 「팔레비」로 였으나 혁명 후에 「모사데그」로 바뀌었다. 사원 민족주의를 맨 먼저 주장하다가 미국 CIA의 힘을 빈 「팔레비」의 반격으로 굴욕적인 퇴진을 했던 이 전 수상의 이름이 「호메이니」의 집으로 가는 길에 붙은 것은 일종의 시적 정의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질문제에 관한 중요발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돈 28일 아침, 이 동네에는 70여명의 외국기자들이 운집한 「호메이니」지지자들 틈에 끼여 「호메이니」의 연설장으로 밀려들어갔다.
연설장소로 마련 된 곳은 의외에도 건축작업이 끝나지 않은 2층「콘크리트」집이었다. 창에는 유리가 반쯤 끼워있고 정문은 아직 벽돌로 형체만 만들어 놓았을 뿐 문은 달려있지 않았다.

<모습 드러내자 환호>
기둥과 벽은 「페인트」자국으로 얼룩져있고, 천장과 벽에는 임시로 설치된 조명장치를 위한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있었다. 「호메이니」가 거쳐하는 곳은 그 뒤에 있는데 울창한 정원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호메이니」의 좌석은 1층과 2층 중간쯤에 돌출한 곳에 있는 푸른「커버」를 한 안락의자였다. 그 뒤로는 아직 손질을 안한 벽을 가리기 위한 푸른색 보자기가 걸려 있고, 그 위에 액자에는 「이슬람」의 성구가 걸려있었다.
예정시간인 상오10시를 5분 남겨놓고 장내가 갑자기 술렁대기 시작했다.
『알라 악바르, 호메이니 락바르』(신은 위대하고 「호메이니」는 우리의 지도자)라는 구호가 우렁차게 장내를 뒤흔들었다. 곧이어 문이 열리며 「호메이니」의 모습이 나타났다.
검은 두건과 푸른 옷 위에 밤색외투를 걸친, 사진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는 표정하나 변치 않고 열띤 구호를 외치는 지지자들을 향해 두어번 손을 흔들더니 다시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장내의 환호성은 절정을 이뤘다. 잠시동안 모습을 드러냈다가 들어가는 그 짧은 동안에 「호메이니」의 말없는 모습이 일으키는 환호를 보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지극히 미워하거나 지극히 좋아하게 만들지 어쩡쩡한 반응은 있을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카리스마」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그가 등장했을 때는 그는 자기 아들 「아마드」와 8세쯤 돼 보이는 손자와 함께 였다.「호메이니」를 제외하곤 방안의 모든 사람이 보료를 짠 바닥에 앉았다.
그는 속삭이듯 조용히 연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목소리는 81세의 노인의 것으로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힘있는 저음으로 울려나왔다.
「이슬람」의 선과 악의 개념이 현실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원칙에서 시작해서 그는 구체제하의 그릇된 생활관습으로부터 지금 진행되고 있는 전쟁에 이르기까지 시종 차분하게 이야기 해 나갔다. 「스타일」은 연설보다 대화조였다. 때로 농담도 하고 적을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 자신은 끝까지 당당한 표정이 지지자들을 더욱 열광케 하는 것 같았다.

<대중궐기 마력 지녀>
이날의 연설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미국인질들에 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다. 다만 마룻바닥에 서민들과 함께 앉은 「라자이」수상과 옆에 바닥에 앉은 「라프산자니」의회의장, 그리고 전선에서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바니사르르」대통령을 일컬어 『수십명의 경호원을 끌고 다니는 「사담·후세인」이라크 대통령)이 과연 이렇게 국민들 속에 섞일 수 있겠느냐』고 조롱했다.
「이란」에 도착한 이래 「호메이니」를 싫어하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를 현실 감각이 없는 「광신자」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는 「호메이니」의 이름은 아직도 즉각적인 대중궐기의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인질문제가 「호메이니」의 말 한마디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부문제만 미결>
그렇기 때문에 인질문제가 며칠을 두고 의회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있는 것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호메이니」는 이미 지난 26일 「라프산자니」의장을 접견하고 미국이 「이란」측 조건을 수락하면 이들을 석방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의회 구성은 실질적으로 「이슬람」공화당 일당독재로 돼 있어 「호메이니」의 의견을 반대할 세력은 없다. 따라서 교착의 이유는 의회보다는 「이란」·미국간의 교섭이 세부문제에서 미 결정인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 교섭에 있어서 명분을 떠나 실리면만 따진다면 「이란」이 미 인질을 석방함에 있어서 최대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시기가 미 대통령선거 이전이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카터」가 되건 「리건」이 되건 간에 일단 당선이 되고 나면 인질문제로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익은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란」쪽으로 보면 그만큼 인질을 미끼로 미국에 압력을 행사할 여지가 줄어든다.
「이란」지도층은 거듭 인질문제와 미국 대통령 선거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런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인질문제는 조만간 해결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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