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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밉지만 그 무기는 아쉬워-"당면 목표는 승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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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테헤란」에서 장두성 특파원】1년을 끌어 온 미국외교관 인질문제는 확실히 「이란」혁명에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었다. 「팔레비」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철저하게 이용되는 과정에서 「이란」국민이 희생되었다는 전제 아래서 혁명의 이념적 방향을 강대국 배척, 특히 반미의 바탕에서 자주노선확립으로 정해 온 「이란」으로서는 인질들이 불가결한 물적 증거 노릇을 해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질의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퇴색해 가고 있고, 특히 이번 전쟁을 겪으면서 인질로 인한 미국의 경제봉쇄 및 국제여론의 악화가 실질적인 압력으로 작용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계 은행에 동결된 90억「달러」에 이르는 자금과 이미 대금을 지불했으면서도 미국 측 조치로 인수받지 못한 군수품 등이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절실하게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이 인질석방을 서두르게 된 「이란」측의 사정이다.
그러나 인질이 석방된다고 해서 미국과의 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속단하기는 힘들 것 같다. 「테헤란」의 시가지에는 미국을 「악마」로 묘사한 「포스터」가 여러 곳에 붙어 있다. 외국기자들은 공보성에서 기자증을 교부 받을 때 『본인이 소속한 언론기관은 미국언론과 어떠한 관계도 없음을 서약함』이라고 쓴 서약서에 서명해야 한다. 미국기자는 물론 「이란」입국이 금지되어있다.
「이란」혁명초기에 구체제 파괴작업이 혁명의 추진력 노릇을 했지만 그 다음 단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새로운 체제의 건설이 뒤따라야 초기의 혁명 열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란」의 경우는 반미로 채색된 첫 작업이 인질문제와 결부되어 1년을 지속해 오는 동안 두 번째 작업은 그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 결과 모든 잘못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풍조가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예컨대 국경에서 만난 「이란」의사는 「이란」-「이라크」전쟁이 미국의 음모로 일어난 것이라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는 『장기판 위만 보지 말고 그 아래를 보아야 된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교두보로서 「이란」이 사라지니까 새로운 중동 교두보를 「이라크」로 정해서 「이라크」를 충동한 결과가 이번 전쟁이라고 했다.
혁명과정에서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인지 인질들을 상징으로 한 「이란」인들의 미국 혐오감은 논리보다는 감정적 차원에서 격렬하게 체질화 되어있다.
「이란」의회에서 인질문제를 토의하던 26일 미국대사관 건물 앞에서 기자는 혁명전 「사바크」에 의해 고문당했다는 30대 남자를 만났다. 그는 벌겋게 단 쇠뭉치로 왼쪽 손바닥과 오른쪽 다리의 허벅지가 지져졌다면서 그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소리』라는 책을 읽은 죄로 6개월을 감옥살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질을 석방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마땅히 사형되어야된다』고 했다.
미국대사관의 벽에는 거대한 천연색 벽화가 서투른 솜씨로 걸려져 있는데 거기에는 「이란」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하는 옆에 서있는 미국군인이 웃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자유의 여신상」몸체는 거대한 감옥 쇠창살로 얽어져 있다.
「바자」(「페르시아」시장)에서 만난 한 보석상 주인은 직업으로 보나 교육정도로 보나 상류층이 분명했는데도 반미감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질을 잡은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라며 곧 석방하는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미국이 인질문제를 너무 과대하게 취급함으로써 「이란」혁명이 마치 인질문제에 부수된 현장처럼 다루는 게 아니꼽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 한국사람이 인질로 잡혔다면 미국 언론들이 그렇게 법석을 떨었겠느냐』고 했다. 「이란」정부가 인질을 석방할 경우 반대「데모」나 반대파 정치인들의 반발이 일어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기자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호메이니」가 승인한다면』 모두들 따를 것이라고 확언했다. 심지어 「사바크」에 의해 고문당했다는 남자까지도 예의가 아니었다.
「이란」의회는 「팔레비」왕 때 건축한 현대식 「콘크리트」건축물로서 「이란」전통적인 건물의 양식을 쓰지 않은 미국식 단조로운 건물이었다. 인질 석방문제를 토의한 첫날인 26일 평소와 다름없이 경기 관단총을 든 혁명군이 크게 눈에 띄지 않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등원하는 거물급 의원으로 보이는 성직자들 역시 중무장한 경비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의원들의 대부분이 정장을 하지 않고 야전 「점퍼」라든가, 남방「셔츠」「스웨터」 등을 입고 있었는데 단상의 의장단에도 「터틀·네크」차림의 사람도 앉아있어 혁명과 전쟁을 함께 치르는 나라의 분위기를 풍겼다.
회의는 야전「점퍼」차림의 평의원이 단상에 올라가 「코란」을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개회사를 하던 의장은 방청석에 외국기자들이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오늘 인질문제를 토의한다니까 외국기자가 많이 나타났는데 그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란」의 문제다. 인질문제를 쫓아다니지 말고 「이란」국민이 싸우는 것을 열심히 보도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방청석에는 외국기자 70여명과 「이란」인 방청객 50여명이 회의를 지켜보았다. 외국기자 중에는 여자 기자가 4명 있었는데 모두 얼굴에 「베일」을 쓰고서야 입장이 허용됐다.
북구에서 온 한 여기자는 수건을 쓰고 들어가려 했지만 「스커트」를 입고 왔기 때문에 입장을 거절당했다.
비교적 긴 「스커트」를 입었는데도 「스커트」자락과 양말을 신은 사이가 20㎝가량 맨살이므로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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