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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평화의 동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인간의 천성이 선한 것이냐 악한 것이냐 하는데 대해서는 동서고금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사람이란 본래 동물이며, 따라서 애타심(Altruism)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견해에 따른다면 인문집단 사이의 관계란 참으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일수 밖에 없을 것도 같다.
실체로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서로 위하고 사람하며 협동하는 「평화의 역사」보다는 서로 물고 뜯고 헐뜯으며 상쟁하는 역사가 훨씬 더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고대나 중세는 젖혀두더라도, 근세이래 지구상 어느 곳에서건 총성이나 살상의 비오 소리가 들리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을 것이며, 금세기에 들어서만도 인류는 벌써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른바 있다.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중동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살육과 대량파괴의 잔학성이 발휘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 살벌한 인간풍속도에 직면해서 인간이 과연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윤리와 평화에의 동경을 구현할 방도는 없겠느냐 하는 양심의 「무브먼트」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앙리·듀낭」의 적십자운동이었던 것이다.
적십자 운동은 교전쌍방을 향해 지금 당장 싸움의 이유와 행동을 전면 비위 시킬 것을 명령하거나 설교할 수 있다고 자처하지는 않는다.
또 적십자운동은 세계의 모든 나라와 집단들이 추종해야할 유권적인 평화의 강령을 일률적으로 제시한다고 자처하지도, 자만하지도 않는다.
단지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싸움과 대립이 산출하는 선의의 피해자들과 인간적인 참상을 지극히 비정치적인 입장에서 극소화시키고 치유해주자는 것뿐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공격하는 자와 방어하는 자, 선공하는 자와 반격하는 자,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죄 없는 피해자들의 아픈 상처를 다같이 어루만져 주려는「하느님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이 운동은 이기심과 갈등의 인류사회에 한 가닥 사랑의 불빛을 끝까지 비추려는 인류양심의 마지막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한말의 어수선한 풍운기에도 우리 앞 세대의 선각자들은 문화민족의 긍지를 살려 1903년「제네바」협약에 가입하고, 1905년에는 오늘의 대한적십자사를 창설했다.
이후 75년간 대한적십자사는 상해 임시정부의 대한적십자회로 그 법통을 이으면서 오늘에 이어졌고 민족수난기와 6·25동난 및 전후 복구기를 통해 빛나는 인도주의 정신을 선양했다. 특히 1921년 일제가 문도지방의 한인들을 대량 학살했을 때 대한적십자회가 벌인 세계적인 「캠페인」과 1952년 「캐나다」에서의 제18차 국제총회 때 『한국에 있는 포로문제』에 관해 우리 적십자사가 별인 활동은 감회 깊은 추억거리가 아닐 수 없다.
70년대에 들어와 대한적십자사는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의 재회를 알선하기 위해 역사적인 대화제의를 선도했고 적십자사의 사업 범위를 단순한 구호에서 더 나아가 장기적이고 사회적인 복지적 활동으로 넓혀갔다. 특히 1975년의 인지사태에 즈음해 한국의 적십자사는 남의 『구호를 받는』기관이 아니라 남의 나라의 불행한 난민들을 적극 『구호해주는』적십자사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제 대한적십자사는 의료·안전·심인·헌혈·재민구호사업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명실공히 봉사와 사랑의 조직화 운동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다만 남은 문제가 있다면 우리 국민 모두가 이 운동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협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라 하겠다.
남을 돕고 보살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하는 길이다. 대한적십자사의 창설 75주를 맞아 그간의 빛나는 업적을 치하하면서 이 운동이 전국민적인 일상활동으로 계속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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