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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으로 넣는 골 '슈팅 머신' 조성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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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성민(오른쪽)은 자신보다 큰 선수 앞에서도 슛을 쏜다. 그 자신감으로 아시안게임 우승을 노린다. [뉴시스]

신동파·이충희·고(故) 김현준·문경은….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남자농구의 슈터 계보다. 다음달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조성민(31·KT·1m89㎝)은 이들의 뒤를 잇는 명품 슈터다.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리는 남자 대표팀(세계랭킹 31위)의 선봉장이기도 하다.

 조성민은 지난달 29일과 31일 서울에서 열린 뉴질랜드(19위)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단연 돋보였다. 평균 신장 1m97㎝의 당당한 체격을 지닌 뉴질랜드 선수들 앞에서 내·외곽을 가리지 않고 슛을 시도해 높은 적중률을 기록했다. 특히 경기 후반 접전 상황에서 던진 3점슛은 쏙쏙 림으로 빨려들었다. 승부처에서 잇따라 터진 조성민의 슛에 6000여 관중은 환호했다. 두 차례 평가전에서 평균 19점을 넣은 조성민은 “꽉 들어찬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농구해 본 게 언제인지 몰랐다. 그래서 더 신나게 플레이했다”고 말했다.

 조성민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대잔치,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만화 ‘슬램덩크’ 등으로 농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연·고대 농구부 선수들만 보면 그냥 다 좋았다”고 했지만 조성민이 처음부터 농구를 잘했던 건 아니었다. 조성민은 “선생님들이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라도 가는 게 목표였다”고 털어놓았다. 한양대를 졸업한 뒤 2006년 드래프트 전체 8순위로 프로에 데뷔했을 때도 그는 흔한 루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조성민은 남다른 노력으로 ‘평범한 선수’에서 ‘비범한 슈터’로 변신했다. 2009년부터 조성민을 조련해 온 전창진(51) KT 감독은 “재능과 잠재력을 갖춘 선수여서 남들보다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한 가지를 가르치면 어떻게든 잘하려고 노력하는 게 눈에 보였다”고 설명했다. 프로 첫 해였던 2006~07 시즌 평균 득점 3.6점을 기록했던 조성민은 2009~10 시즌엔 9.7점, 2010~11 시즌엔 13.8점까지 득점력을 높였다.

 지난 시즌에는 평균 15.02점을 기록해 국내 선수 득점 1위를 차지했다. 한 경기 최다 자유투 성공(18개)과 자유투 연속 성공(56개) 기록을 세운 것도 지난 시즌이었다.

 지도자들의 칭찬도 자자하다. 유재학(51) 대표팀 감독은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내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조성민”이라고 했다. 현역 시절 특급 슈터였던 문경은(43) SK 감독도 “공을 갖고 슈팅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낼 줄 안다. 나보다 훨씬 낫다”고 치켜세웠다. 조성민은 “훈련할 때
남들보다 집중력이 높은 편이다. 100개를 던지더라도 그냥 슛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넣을 지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의 응원도 조성민이 명품 슈터로 거듭나는 데 큰 힘이 됐다. 조성민은 6년 연애 끝에 2012년 5월 플루티스트 윤숙정(28)씨와 결혼했다. 서울대 음대를 나와 경북도립교향악단 플루트 수석 연주자를 지낸 윤씨는 결혼 이후엔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음악을 그만 두고 전국의 체육관을 따라다녔다. 조성민의 장모는 보양식으로 사위를 든든히 먹였다. 지난 2006년 소속팀의 미국 전지훈련 도중 부모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던 조성민은 “농구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장모님이 산삼까지 달여주셨다. 아내와 처가의 전폭적인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말했다.

 6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입촌한 조성민의 눈은 이제 스페인 농구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으로 향한다. 특히 아시안게임은 조성민에게 남다른 무대다. 성인 대표팀에 처음 발탁됐던 무대가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 한국은 결승에서 중국에 져 금메달을 놓쳤다. 조성민은 “금메달 외 다른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내 역할을 잘하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김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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