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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도전|본지창간 15년 주년기념 특별기획 국내외석학 100의 「그룹」인터뷰(14)|제2부 한국의 사회개혁(3)|새바람 이는 농촌 「사례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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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의사회구현을 위한 사회정화운동은 농촌에도 구석구석까지 번져 뿌리가 내리고 있다.
새마을운동이 생활환경을 탈바꿈하는데 주력하였다면 농촌정화운동은 농·어민의 의식을 일깨우는 정신개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농어촌 곳곳에서는 착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한 농민들이 마음놓고 잘사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정화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경북 경산군 안심읍은 정화운동으로 범죄를 줄인 좋은「케이스」중의 하나다. 이곳은 이제까지 경북도내에서도 우범지역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감소 일로의 절도>
지난 한해동안 강도 52건, 도난 1백20건, 폭력 2백43건, 각종 교통사고 2백48건이 일어난 경산군 안심읍은 반 도시·반 농촌이라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주민들마저 손가락질을 받던 곳이었다.
지난8월초 주민 15명으로 조직된 안심읍 정화위원회는 우선 순화교육을 받고 나온 유모 군(19)등 문제 청소년 3명에게 무료로 운전교습을 받도록 했다. 주민 스스로 정화사업기금을 모아 청소년지도에 나섰다. 그 결과 지난 8월 한달 동안 범죄발생은 폭력3건, 절도2건, 교통사고 5건으로 줄어드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정화위원장 이윤희씨(55·과수 업)는『이웃끼리 서로 인사를 나누게 하고 그들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상호 신뢰하는 마음을 일깨우는데 노력한 것이 뜻밖의 좋은 결실을 맺어 가는 것 같다』고 말하고『앞으로는 농촌의 전통적인 미덕을 되살려 흔들리기 쉬운 젊은이들의 가치관을 바로 잡아주는데 노력하겠다』고 농촌 정화방향을 제시했다.
농촌의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급격히 밀려들어온 서구의 물질문명의 갈등이 오늘날 농촌 젊은이들을 방황하게 만들고 정신풍토를 어지럽히고 있으므로 이를 개선하는 방향에서 농촌정화가 이뤄져야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농촌정화는 누가 하라고 시켜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 스스로가 앞장서 방종과 무질서를 추방하겠다고 결심할 때 그 열매는 더욱 값진 것이 되는 것이다.
충남 서산군 태안반도 남만의 부석면의 경우 마을주민 20여명은 지난 8월20일 음주·폭력·도박을 일삼던 배유웅씨(40)가 순화교육에 입소하게되자 주민들 자신이 책임지고 순화시킬 것을 공동명의로 건의, 당국의 선처를 받게됐다.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살아간다는 기분에 별로 주민들에게 공감 할 수 없었으나 이웃들이 3년 동안 마을기금으로 땀흘려 모아둔 1백만원을 선뜻 건네 줄 때 마음속으로 울면서 다짐했다』고 배씨는 농촌정화선봉에 서게된 동기를 말한다.
이 마을 박영배씨(37)는 『동네골칫거리로 통하던 배씨도 우리의 이웃임에는 틀림없는 것 아니냐』며 그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배씨는 이제 이웃들의 도움으로 4t짜리 통통배를 타고 서해안을 누비는 외에도 바다로 나가지 않는 날에는 이웃 청소나 동네어귀 정비 등에 땀을 흘린다.

<남의 아픔은 나의 아픔>
부석면 창리 이장 김영덕씨(52)는『경제성장으로 농·어촌도 이제 어느 정도 부의 축적을 이뤘으므로 미풍양속을 되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으름·질투·허위·시비가 끊이지 않던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 3리 두메산골도 정화운동으로 조용히 옛날의 평화로움을 되찾았다.
2주간의 순화교육을 받고 돌아온 윤석필씨(21)는 웃어른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농사일과 마을 청년회를 다시 활성화하는데 앞장서 노력했다.
『반성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 이상 남의 아픔을 내자신의 아픔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윤씨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청년회를 움직여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업을 밀고 나갔다.
들에서 5일 밤을 지새다시피 하며 일손이 달려 퇴비를 만들지 못하는 이 동네 이석구씨(54) 등 14가구에 30t의 퇴비를 쌓아주었다.
폐품수집으로 모은 돈으로는 불우 학생 20명에게 학용품을 마련해주고 새 마음 갖기 운동을 벌여 고운말 쓰기, 웃어른 공경하기를 실천해나갔다.
이 마을 박수영씨는『윤씨 등 청년들의 움직임이 처음에는 몹시 불안하기만 해 오히려 기피할 정도였었다』며 돌변한 마을분위기가 도무지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이성래씨(50)는『나중에는 그들의 뜻을 이해, 오히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주민들에게 청년들을 본 받자고 호소하게 됐다』며 농촌 사회정화를 위한 정신개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했다.
윤석필씨는『동네발전의 밑거름이 되어보자는 생각을 하는 순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고 말하고 이 운동을 좀더 적극적으로 펼 수 있는 구심체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구나 조직체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경기도 양주군 은현면 봉암리 고상덕씨(28)도 자신의 탈바꿈이 마을의 탈바꿈과 직결될 수 있다는 생각에 떳떳치 못했던 과거를 청산했다.

<순화교육 받고 앞장 나서>
고씨는 함께 순화교육을 받고 돌아온 청년들을 모아 은봉 청년 정화추진위원회를 조직, 폭력과 불신을 몰아내기에 솔선하고 있다.
『우리의 노력을 결코 한때의 겉치레 활동으로 보지 말아달라』는 고씨는『동민들 스스로도 안이한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농촌의 내일을 걸고 꾸준히 노력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을청년 54명이 고씨의 뜻에 찬동, 동네정화에 스스로 나서 이제는 방범대원 없는 마을이 됐고 누구나 웃으며 맞을 수 있는 부락이 됐다.
주민 최민남씨(42)는『뒤늦게나마 일고있는 새바람이 계속 활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급 인사들부터 정화에 적극 참여, 국민서로간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노력해야겠다』 고 말했다. 최씨는 그 동안 몇 번 반짝하는데 그쳤던 각종 사회운동을 예로 들었다.
이장 안명호씨(44)는『정화의 불길이 내면에서부터 당겨져 계속 번져나가기 위해서는 농촌에 그 동안 만연됐던 관 주도의 행정, 농민과 관리들간의 대화단절, 각종 부조리가 시급히 없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순박한 농민들이 열심히 일한 만큼 권리가 보장되는 농촌사회, 정의가 통하는 농촌을 건설하기 위한 농촌사회정화는 한낮의 꿈이 아닌 현실로 그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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