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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법치국가의 조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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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큰 제도적 특색은 활성적인 의회와 독립적인 법원의 존재다.
국민의 동의 없는 정치가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함이 민주주의의 원리라는 점에서 국민대표기관인 국회의 활성 도는 그 나라 민주정치의 한 척도일수 있고, 국민의 인권과 재산을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독립은 그 사회의 법치주의와 정의를 재는 자(척)일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를 돌이켜 보면 국회는 행정부와의 갈등에서 흔히 열세에 빠져 국민대표 기능을 제대로 못했는가 하면 활력을 가졌을 때라도 심한 당파적 이익의 분열과 부패요소로 인해 민주주의의「코스트」에 대한 회의만 불러일으킨 역기능을 보여왔다.
사법부 역시 시류와 권력의 향배에 좌우면한 달갑잖은 기록과 함께 유형 무형적인 권력의 침윤에 스스로를 노정시켜 온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제5공화국 헌법 안은 당연히 이 같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문제를 추출하고 버릴 것은 무엇이며 택할 것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제5공화국이 표방하는 이념 가운데 민주·정의라는 개념은 국회·법원의 권능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 같은 무력국회, 독립이 흔들린 사법부를 다시는 초래 않을 헌법적 장치의 강구는 시대적 요청이 되는 셈이다.
우선 국회의 경우, 새 헌법 안에서 보이는 문제인식은 유신헌법이 굴절시킨 국회를 활성화시키자는 뜻과, 그러면서도 과거와 같은 낭비·분열적 요소가 나올 수 없도록 풍토를 쇄신하자는 뜻을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국회의 활성화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입법부구성에 관한 대통령 관여 권의 배제다. 새 안은 회원 3분의1에 대한 대통령의 추천 권을 폐지하고 대신 비례대표제채택의 근거를 명문화했다.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상 당연하다 할 것이다.
국회에 새로이 국정 조사권, 비상조치에 대한 승인 권 및 해제결의권 등을 부여한 것도 활성화에 기여하는 내용이다.
제3공화국까지 채택된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현행헌법에 의해 폐지됐다가 이번에 국정조사권의 형식으로 부분적으로 부활되는 셈인데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국회본연의 임무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이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모처럼 국회에 부여된 이 권한이 실효를 거둘 수 있도록 그 발핵 요건이나 실시에 관한 구체적 사항을 규정할 하위법의 제정과정에서 새 헌법의 정신이 최대한 존중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통령 비상조치 권에 대응하는 국회의 경제정치는 새 헌법의 수확의 하나일 것이다.
이밖에 국회에 부여된 총리임명 동의 권·내각불신임 권·개별적인 장관불신임 권 등은 현행법과 같다. 이상의 몇 가지 기능감화로 국회는 유신헌법 하에서보다는 훨씬 활기를 갖게 되었다.
다만 연중 국회개회 일상 한 1백50일, 엄격한 임시 회 소집요건 등은 현행법과 같다.
앞으로 개정될 국회법에서는 의사·발언·대행정부관계 등에 대한 구법의 잔재를 씻어야 할 것이며 대행정부 질문서 같은 제도의 부활도 검토함직 할 것이다.
정치풍토의,·쇄신과 민주주의 토착화를 위한 장치로서는 국회의원의 청렴 의무 이권 개입금지 등의 새로운 조항을 두었으며, 의원의 겸직제한을 완화할 길을 터놓았다. 이것은 과거 정치인들이「직업적」정치를 하는데서 오는 과중한 정치자금의 부담을 덜고 부패화의 우려를 막자는 것이다.
겸직제한을 완화하여 의원이 영리와 유관한 타직을 겸할 수도 있게 할 경우 직위를 영리에 이용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규제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풍토쇄신을 위한 가장 획기적인 조치는「부칙」에 있다. 구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규제할 특별법의 소급제정근거를 두고 기존 국회·정당의 해산을 규정한 것은 제도와 규범에 의한 쇄신보다는 권력조치로서 쇄신코자하는 새 헌법 안의 의지다.
따라서 부칙에 의한 이 조치는 집행자가 얼마만큼 합리적으로 객관적 타당성 있게 시행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문제이며, 이 작업은 제5공화국 정치질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봐야한다.
정당운영자금의 국고보조근거를 둔 총강7조4항은 풍토쇄신을 위한 적극적 의사표현으로 보이는 것이다.
과거 정당이 부패·이권개입 등의 온상이 돼온 일면을 막고 건전한 정당을 육성하자는 취지로서 국회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관리에 관한 새 헌법 안의 내용은 현행법에 비해 현저히 개선됐다. 대통령이 임명하던 중앙선거 관리위원장을 위원 중에서 호선케 함으로써 행정부로부터 독자성을 더 확보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선거사무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행정기관에 지시할 수 있게 하고 행정기관은 이에 응하도록 의무화한 것이 중요하다.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선관위 기능을 이만큼이라도 강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지방의회의 구성시기를 법률에 위임한 것은 통일될 때까지 구성하지 않는다는 현행보다는 나아졌지만 조속한 실현이 국민염원이란 점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법원에 있어서는 사법부독립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이 회복됐다.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의 법관인사 관여 권이 크게 축소되어 일반법관을 대법원장이 임명케 됨으로써 인사자율성이 강화된 것과, 징계조치로서는 법관파면을 할 수 없게 하여 법관 신분보장을 강화한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그밖에 대법원에 일반법관을 둘 수 있게 하고 전담 부 설치근거를 명문화한 것은 재판업무의 신속성·전문성 등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6년 연임제인 대법원장 임기를 5년 단임 제로 한 것은 신진대사의 촉진효과를 기대케 한다.
비유컨대 헌법은 건물의 골조와도 같다. 어떤 건물을 짓느냐는 골조에서 이미 결정되는 것이지만 건물의 쓰임새나 변리 성·합리성·미권 따위는 골조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세부공사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새 헌법 하에서 이루어질 일연의 입법작업도 새 헌법이 담고있는 기본권신장·권력분립·정치풍토쇄신·사법부독립·공정한 선거관리 등의 정신을 최대한 존중하여 십이분 반영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걸음 나아가 새 헌법에서 미흡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하위 법에서 보완하겠다는 의지가 요망된다. 또한 제5공화국에서는 법을 기교적이 아니라 대경대도로 해석하고 운용하는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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