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질서 위한 새 정치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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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 10대 국회의 운영과 기존정당의 장래를 결정하는 새 헌법안의 부칙내용이 마침내 밝혀졌다.
이 부칙에 따르면 새 헌법의 발효와 동시에 10대 국회는 해산되고 현역의원의 임기는 종료되며 기존정당은 모두 해체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부패·선동 정치인들의 재등장을 막고 정치풍토를 쇄신하기 위한 특별법을 소급 입법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두고 새 국회가 구성될 때까지의 국회기능은 국가보위 비상대책위가 과도적으로 담당토록 한다는 것이다.
새 시대의 새로운 정치질서의 형성에 이미 국민적 합의가 있는 이상 구질서와 구인물을 어떤 방법으로든 청산하고 정리하는 것은 불가피한 한 과정으로서 일찍부터 예견돼온 일이었다.
새 시대가 새 세력에 의해 주도돼야 함은 자명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구세력의 퇴장 역시 자명하다. 따라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결집한 신당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정당의 해체가 마땅히 전제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정당이 권력형 축재 정치인·비리 정치인 등이 몸담았던 온상이자 선동·폭력·권모술수의 타락한 정치작태로 얼룩진 부정적 요소를 안고 있었다는 점에서 같은 모습, 같은 구조로 다시 새 시대의 정치를 주도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기존정당에 속해 있던 이른바 「구정치인」들에 대해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 지탄받고 있는 구정치풍토의 조성책임이 이들에게 있는 이상 어떤 형식으로든 이들의 정계 재등장은 규제될 필요가 있다.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법을 소급 제정한다는 부칙조항도 이런 필요성에서 설치되는 것이다.
다만 이 목적을 위해 반드시 소급입법의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관해서는 이론의 여지도 있을 수 있지만, 당국으로서도 오래 부심한 결과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하자면 폐습에 물든 정치풍토를 쇄신하고 양심적이고도 참신한 새 정치세력의 등장을 촉진할 필요성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에 소급입법의 방법이 불가피하게 채택됐다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기존정당의 정치인이라 하여 폐습에 모조리 유책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고 그 중에는 그 나름으로 건전한 양식의 정치를 위해 노력한 인사도 불무하리라는 점에서 정계에서 배제할 인사의 범위는 필요한 최소한에 그치게 하는 것이 순리라고 보며, 또 그래야만 국민선택의 범위를 사전에 불필요하게 제약할 염려도 없어질 것이다.
또 한가지, 이 옥석을 구분하는 작업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고도 공명정대한 기준에 따라 이뤄져야 할 것이며, 보복이나 인맥개재의 인상을 혹시라도 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리라 본다.
10대 국회의 해산도 불가피한 과정의 하나일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의 폐지가 당연한 이상 유정회의 존재가 더 존속할 수 없음은 자명하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청산 또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정당과 정치인으로 구성된 현 국회가 새 시대 정치질서의 골간을 형성할 새로운 중요법률의 입법 담당자가 될 수는 도저히 없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회기능을 어떤 기관이 과도적으로 대행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는데 현실적으로 선택의 방법은 유신 직후처럼 비상국무회의가 맡는 길, 또는 다른 기구를 따로 구성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히 이번 경우 사회개혁의 추진으로 국민적 신인을 얻은 국보위가 있어 내각이 바로 입법권을 행사하는 양상은 회피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국보위의 법률적 지위가 대통령 자문기구로 돼 있고 그 구성 역시 공무원 위주라는 점을 살펴 국민적 대표기능을 좀더 살릴 수 있는 보완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
요약컨대 새 헌법의 부칙은 새 정치질서의 형성을 위한 정지작업의 하나이며 남은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다진 터전 위에 얼마나 더 훌륭한 민주적인 새 질서를 구축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과제의 추진 여하에 따라 새 헌법 부칙의 이 획기적인 조치에 대한 평가 역시 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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