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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는 그림]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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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오스트리아 출신의 요제프 단하우저(1805~45)가 그린 '피아노를 치는 리스트'(1840)에는 빈의 피아노 제조업자 콘라트 그라프가 1820년대에 만든 피아노와 함께 작가.음악가들이 대거 등장한다.

리스트의 음악세계가 당시 음악가.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왼쪽엔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1세, 빅토르 위고가 책을 들고 있고, 그 옆에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니콜로 파가니니,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가 서 있다. 소파에 앉아 시가를 왼손에 들고 있는 남장 여인은 쇼팽의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다. 그가 방금 벗은 남자 모자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부분도 눈길을 끈다.

리스트의 발곁에는 그의 애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모자를 벗은채 앉아 있다. 폭포 모양의 레이스 장식의 머리카락은 여성의 성적 매력의 상징이다.

마리와 상드는 음악을 통해 내적 욕망을 일깨운다. 상드는 음악에 도취한 나머지 뒤마가 들고 있는 책을 덮는다. 그것도 모자라 왼발로 아예 바닥의 책을 밟는다. 리스트의 연주는 뒤마와 위고의 독서를 방해하고 만다. 이성이 감정에 굴복하고 음악이 문학에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다.

초상화로 유명한 단하우저가 베토벤 사망 직후에 석고로 떠낸 베토벤의 흉상이 마치 거울처럼 리스트를 비추고 있어 그림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연주자와 청중이 마주 보는 게 당연하겠지만 여기서는 피아니스트의 시선이 베토벤의 흉상에 고정돼 있다. 리스트는 베토벤을 가리켜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인도한 불기둥과 구름기둥'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여기서 리스트가 연주하는 음악은 자신이 편곡한 베토벤의 교향곡임에 틀림없다. 리스트가 피아노로 그려낸 베토벤의 초상은 곧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화가는 이 흉상을 1840년 리스트에게 헌정했고 같은 작품이 빈 역사박물관, 본 베토벤하우스에 소장돼 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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