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다들 독배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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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박 위원장은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의원 한 분 한 분이 다 도와주시면 제가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이 일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우윤근·이춘석 의원, 박 비대위원장, 김영록·문재인 의원. [뉴시스]

7·30 재·보선의 참패로 지도부 공백상태인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박영선 원내대표가 맡는다.

 새정치연합은 4일 의원총회를 열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 박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했다. 야당 사상 첫 여성 비대위원장의 등장이다. 정치권 전체론 2011년 위기 상황에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신임 박 비대위원장은 “밤섬에 혼자 남은 기분입니다”라고 첫마디를 떼었다. 그는 “(7월 30일) 선거에 패배하고 한강다리를 건너가는데 많은 분들로부터 ‘(선거 패배로) 사퇴한다. 혼자만 두고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면서 수락연설 도중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 ‘무당무사(無黨無私·당이 없으면 나도 없다)’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의원 한 분 한 분이 도와주시면 현실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의총 전 박 위원장 측근들은 비대위원장직 수락을 말렸지만 “다들 (독배를) 마시라고 하니 마시고 죽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의총 전 트위터엔 “비가 와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새는 하늘을 날고 눈이 쌓여도 가야 할 곳이 있는 사슴은 산길을 오른다”는 양광모 시인의 시구절을 적었다.

 이번 비대위는 박 위원장 개인으로선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다. ‘야당 재건’이 과제이기 때문이다.

 유인태 의원은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다 할 경우 상처가 많이 날 수 있어 외부인을 구하자는 얘기들을 했다”며 “그러나 각계 의견 수렴 결과 압도적인 다수가 박 위원장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정세균 의원이 의총 중 “굳이 서둘러 비대위를 구성할 이유가 있느냐”고 했지만 소수 의견이었고, 문재인 의원은 “재·보선 결과에 대해 똑같이 책임져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개인 의견을 말하지 않겠다”며 비대위 구성에 관한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박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나왔다. 18대 대선 직후 대선평가위원장을 맡았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7·30 재·보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박 원내대표가 비대위를 끌면 전망이 없다”고 혹평했다.

 MBC 기자 출신의 박 위원장은 2004년 열린우리당 대변인에 발탁되며 정계에 진출한 3선 의원이다. 2007년 대선 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BBK 의혹’을 파헤쳐 ‘저격수’란 별명을 얻었다. 이 후보 면전에서 의혹을 제기하며 “왜 그러세요? 저 똑바로 못 보시겠죠?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고 쏘아붙이고, 이 후보가 “저게 미쳤나. 옛날엔 안 저랬는데…”라고 혼잣말하며 지나가는 장면이 노출된 적도 있다.

 19대 국회에선 여성으로 첫 법사위원장을 맡아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까지 법사위가 차단, ‘법사위 포비아(공포증)’란 말도 유행시켰다. 외국인투자촉진법안 처리 땐 법사위원장으로 법안처리를 막아 올해 예산안 통과를 지연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원내대표에 당선된 뒤엔 ‘강성’ 이미지와 달리 시인인 도종환 의원의 시집 제목인 ‘부드러운 직선’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곡선인 처마가 직선인 나무로 돼 있듯이 야당인으로서의 선명성과 타협 정치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권은희 의총 출석=7·30 재·보선 내내 공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권은희 의원이 의총에 처음 출석했다. 권 의원은 “부패를 반복하는 세력에 냉정하게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인사했다. “광산을과 권은희에 대한 얘기, 많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고도 했다.  

강태화·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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