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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전두환 장군 <서종철씨(국방정책 자문위원)>|청년 장교 때부터 지휘력 뛰어나|자상하나 의리 저버리면 서릿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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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 역사 창조에 신명을 바칠 것을 겨레 앞에 서약하고22일 예편한 전두환 장군은 민주복지국가와 정의사회의 구현을 자신의 국가 경륜으로 제시했다. 10·26사태 이전까지 만해도 장군은 국민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10·26」이라는 역사적대사건의 처리와 5·17이후 사회각계·각층에 도사린 부정의 척결로 국민 앞에 폭넓은 과단성과 행동력을 나타냈다. 장군이 내건 「구국경륜」은 30년의 긴 군 생활에서 ,사상으로 서라 기보다 행동으로 이미 표현돼 왔다.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역임한 서종철 예비역대장(56·국방정책자문위원)은 민족사의 한 격동기에 전 장군이 지도자로서의 대임을 맡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고 증언한다.
전장군의 국가보위에 대한 신념과 그가 제시한 민주복지국가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국가지표는 청년장교시절부터 싹터온 것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전 장군과 생활을 함께 해온 서 장군은 이렇게 증언하고있다.
전두환 장군이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것은 한국전의 와중이었던 1951년이었다. 격전이 벌어지고 있던 시기에 사관학교를 택한 장군의 결의는 이미 국가에 대한 헌신을 행동으로 나타낸 것이다.

<사병복지에 남다른 관심>
4년제 정규육사 첫 졸업생으로 55년에 임관한 전 장군은 25사단72연대 중대장시절에 「의」를 바로 세우고 복지를 보장할 때 그 조직사회가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가를 실천했다.
사단 안에는 80여명의 중대장이 있었지만 전두환 중대장은 유난히 돋보였다. 부하를 통솔하는 법이 범상치 않았다.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 중대장으로서 부하를 사랑했다. 부하들의 내무생활을 자상하게 돌보면서 사병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때 이미 전 장군은 부대의 전투력은 지휘관을 중심으로한 단결력에서 나옴을 알고 명랑하고 합리적인 내무반생활을 향상시키는데 힘썼다.
당시 25사단은 휴전직후여서 여느 전방사단이나 마찬가지로 중대에는 제대로 된 막사 하나 없는 실정이었다. 막 전쟁을 치른 뒤라 질서도 제대로 안 잡혔고 사병복지란 생각도 못할 처지였다. 그럴 때 부임해온 전두환 중대장은 부하들의 사기양양을 통한 정신전력강화에 진력했다. 넉넉지 못한 군대살림이었지만 중대장의 노력으로 이룩한 사병복지는 사기를 올려줬고 부대는 일사불란하게 단결됐다.
전 장군은 이 무렵의 중대장시절, 적의 「토치카」를 화염방사기·화염병 등을 이용해 육탄으로 공격하는 「특화점공격전술」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휴전이 됐다고는 하지만 언제 전쟁이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전술개발·전기연마는 그때 군의 지상과제였다. 그럴 때 전두환 중대장이 개발한 이「특화점공격전술」 은 발군의 창안이었다. 이 전술은 사단 안의 전체 중대장에게 시범을 보인 뒤 전야전군에 보급됐다.

<무슨 일에나 「천하제일」로>
새 국가지도자로 추대된 전 장군은 중대장시절에 이미 그 그릇을 닦고있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다. 국민의 복지가 증진되고 계층간의 불신풍조가 씻겨 국민적 단합이 이룩될 때 안보가 튼튼해진다』 고 생각해왔다. 전 장군은 30년 동안 군인생활을 하면서 어떤 자리에 있을 때나 부하들의 생활을 걱정했다.
군 최고계급인 대장까지 진급했지만 그는 진급에 관심을 갖는 일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항상 사보다는 공, 개인보다는 국가라는 마음가짐으로 맡은 일에 헌신적이었고 그렇게 일하는 동안 진급은 부수적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한 사람만이 응분의 보상을 받고 또 받아야한다는 것은 전장군의 생활철학이다. 국가의 지도자란 「신의 섭리」 와 「하늘의 뜻」 에 따라 탄생한다는 장군의 말은 그의 이러한 생활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가목표로 제시된 정의사회구현도 그의 생활철학의 내면에서 우러나왔다고 볼 수 있다.
군에서 허위는 절대금물이다. 전 장군은 그것을 행동으로 보였다. 적이 들어왔는데 허위보고를 했을 경우를 상상해보자.
생명을 건 전쟁에서 허위란 바로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빚고 만다. 전 장군은 지휘관시절 상사와 부하·동료간의 신뢰가 전투력의 필수요건임을 보아왔다.
육군본부에 근무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기면 밤잠을 자지 않고라도 해결점을 찾아내 주위를 놀라게 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특전사여단장으로 있을 때 전 장군은 일요일도 집에서 쉬는 날이 없었다. 오늘날 특전사의 전투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는 전장군의 이 같은 헌신적 노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전 장군은 어떤 부대를 맡든 그 부대의 목표를「천하제일」로 삼았다. 22일 전 장군이 전역식을 가진 ○○사단의 별명이 바로 천하제일사단이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곳에서 전 장군은 세계 최강의 보병사단을 만들어놓았다. 그 무렵 북괴가 파 내려오던 땅굴이 거기서 꼬리를 잡힌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공·사가려 맡은 일에 헌신>
71년 초 월남에서 전 장군이 벌인「박쥐25호 작전」은 빈틈없는 부대통솔로 항상 최고수준의 전투준비를 하고있음을 나타낸 실례였다. 당시 전 장군이 연대장이던 백마부대29연대는 「닌호아」지역에서 한국군 작전지역을 위협하는 월맹정규군과「베트콩」 혼성군 소탕에 나섰다. 29연대는 적의 집결지를 기습해 작전지역을 l주일만에 장악했다. 이 작전에서 병사l명이 부상한 것이 피해의 전부였다.
10·26사태로 국가가 위기를 맞았을 때 전 장군은 국군보안사령관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맡아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전 장군은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 국가기강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갖게 했다.
전 장군은 당시『국가위기를 당해 공직자가 인기에 영합하면 국가는 누가 지키겠느냐』며 맡은바 임무에 철저했다.
지난5월 광주사태에 이르는 일련의 혼란사태가 국가를 존망의 위기로 몰고가자,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전 장군은 그 동안 국가위기조성의 요인이 되어온 각종 적폐에 손대 지도자로서의 결단력과 경륜을 국민들에게 보였다.
국보위상임위원장으로 있으면서 건국 3O여년 동안 사회곳곳에 번진 비리와 부정을 척결하고 새사회 건설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전장군의 최근 조치에서 불의· 부정을 용서 앓는 신념의 단면을 볼 수 있다.
큰일을 당하면 무서운 결단력과 놀랄만한 행동력을 보여온 전 장군이지만 부대내무반에서는 부하의 담요자락을 바로 덮어주는 자상한 지휘관이었다. 연대장·사단장시절에는 새벽에 전방초소에 올라가 부하들에게 담배를 권하며 격려하고 월남에서는 장병들을 햇볕에 오래 세워두는 일이 눈에 띄면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공수여단장 시절 전 장군은 생명이 위독한 부하의 입원실에서 축축한 눈으로 밤을 샌 적이 있었다.

<혈연·지연거부는 천성적>
솔직 담백하고 청렴결백했던 전 장군은 공사가 분명했다. 공생활에서 전 장군은 부하들에게 늘 「충」과「의」를 강조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동료·상하간의 의리를 우리의 문화 유산 중 가장 값진 것으로 여겼다. 국가에 대한 충성과 동료·상하간의 의리를 실천하는데 전 장군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자신에 엄격한 만큼 이를 저버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추호의 용서도 없었다.
군에서 전 장군은 자리를 옮겨도 흔히 말하는 자기사람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인맥과 지연, 학벌과 혈연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전 장군은 천성적으로 거부해왔다. 어떤 자리에 앉든 그 구성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케하는 용재술을 갖고 있었다.
전 장군이 맡은 부대는 언제나 하부조직에 활력이 넘쳤고 책임감이 강했다.
전 장군은 끊임없이 반성하고 약점을 보완해 가는 노력형의 지휘관이었다. 중대장 시절 이미 특화점공격전술을 개발시켰던 전 장군은 당시 「미사일」이 없던 한국군의 전술개발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었다.
그러나 전 장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59년과 60년 미국에 건너가 특수전학교·보병학교 유격과정 등을 수료하면서 특수전분야의 전문가로 독보적 경지를 개척했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지휘관이었지만 행동에 앞서 참모들에게 토론과 의견개진을 무제한 보장하는 민주적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했다. 이렇게 내려진 결론을 실천할 때는 어떤 난관도 그를 막지 못했다.
전 장군이 국가지표로 내세운「민주」·「정의」·「복지」 국가건설은 그가 30년간 몸담아온 군에서 닦은 신념과 철학의 집약이며 결정체라고 보아 마땅하다. <기록=권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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