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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전환」에 기대한다"|최 대통령 하야발표 각계 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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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최 대통령의 「사임성명」에 쏠렸다. 「특별성명」이 있다는 소식에 지난밤을 궁금하게 보냈던 시민들은 「텔리비전」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통령사임성명을 들으면서 그동안 갖은 시련을 무사히 극복하고 새 지도자가 탄생될 수 있는 바탕을 이루어 놓은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냈다. 시중상가와 관가, 그리고 직장에서는 빠른 시일 안에 국민적 지지를 받는 새로운 지도자가 선출돼 안정된 새 정부가 출범되기를 한결같이 바랐다.

<영빈관>
짙은 회색 「싱글」양복에 줄무늬「넥타이」를 맨 최규하 대통령은 성명을 낭독하는 동안 시종 차분한 표정.
상오 10시 정각 최 대통령은 최광수 대통령비서실장을 데리고 민관식 국회의장직무대리·이영섭 대법원장·박충훈 국무총리서리와 청와대 출입기자만을 비롯하여 김경원 특보 등 대통령 특별 보좌관·수석비서관 등이 대기하고 있는 영빈관에 들어섰다.
전면 단상중앙에 마련된 발언대에 다가선 최 대통령은 안경을 쓴 후 미소를 띤 얼굴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한 후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로 준비한 성명을 낭독했다.
최 대통령은 15분 동안 성명을 낭독하면서 특유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거의 고저 없이 일관했다.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의 앞날에 평화와 안정, 그리고 영광과 융성이 함께 있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는 말로 성명낭독을 마친 최 대통령은 단하의 기자석으로 내려섰다.
서기원 청와대대변인과 함께 기자석을 약 1분간 돌면서 최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그동안 수고들 많았습니다』는 등의 인사를 하고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오른손을 들어 석별의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최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내가 한번 그리(기자실) 가지』라고 다시 인사를 하고는 배석자들과 함께 영빈관을 나갔다.
최 대통령은 하야성명을 발표하기에 앞서 영빈관 2층에 모인 전 국무위원과 국가보위비상대책 위원들에게 사임결심과 배경을 알리고 뒷일을 부탁했다.
최 대통령은 이들과 고별의 악수를 나눈 뒤 영빈관 1층에 마련된 발표장으로 향했다.

<16일 아침의 청와대>
최규하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한 16일 아침 전 국무위원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들이 모두 청와대에 들어와 그 주변에는 승용차가 늘어서는 등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
청와대직원들도 일손을 놓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후임 대통령을 뽑는 정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 앞으로 청와대비서실은 어떻게 개편될 것인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청와대 주변>
박충훈 국무총리서리는 16일 상오 8시 50분쯤 중앙청에 등청, 비서실장·기획조정실장·행정조정실장 및 공보·정보·의전비서관과 간단한 회의를 마치고 상오 9시 10분쯤 청와대에 들어갔다.
이 때 전 국무위원과 국보위비상대책위 위원전원이 청와대에 모여 최 대통령으로부터 사임결심과 배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최 대통령은 「10·26」이후 자신이 겪었던 학생「데모」·광주사태 등 불행한 사건들을 적시하고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에게 『내가 회견을 시작하는 상오 10시 정각부터 박충훈 총리서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게될 것』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는 것이며, 한편 황선필 총리공보비서관은 하루전날 박 총리서리의 결재를 맡아 마련한 『대통령 권한대행 특별담화문』을 상오 11시쯤 유인물로 보도진에게 배포했다.
김용휴 총무처장관은 전 국무위원이 대통령 권한대행 박충훈 국무총리 서리에게 사표를 낼 것이냐는 질문에 『후임 대통령을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곧 뽑는다면 굳이 사표를 낼 필요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에 열린 임시국무회의에는 국무위원 외에 유학성 중앙정보부장·이희성 계엄사령관·이광노 국보위내무위원장이 참석했다.

<준비작업>
최 대통령의 하야 준비작업은 일요일이었던 지난 10일부터 은밀히 시작됐다.
휴가 중 최 대통령의 긴급부름을 받은 서기원 대변인은 이날 청와대 본관에서 최광수 비서실장이 최 대통령과 상의해 미리 만들어놓은 지침에 따라 하야성명의 기초를 끝냈다.
이어 11일 상오 김포공항 확장준공식에 참석한 최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고 성명서를 수정했다.
사안이 워낙 극비를 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작업에는 청와대에서도 대통령과 비서실장·대변인만이 참여했고 최종 손질된 성명은 정동렬 의전수석비서관이 정서했다.
원래는 「D데이」를 14일로 정했다가 최후순간에 16일로 늦추어졌다.
13일에는 18일에 있을 통대 안보정세보고회 치사를 만든다는 연막을 펴고 성명서 외에 해설자료까지 만들어 준비작업을 모두 마무리지었다.
보안유지 때문에 성명서와 해설자료를 인쇄에 붙일 수가 없어 15일 하루종일 배포용 서류를 전자복사기로 복사.
최 대통령도 붓글씨로 정서된 원고가 아니라 정 수석비서관이 배포용으로 정서한 성명문을 읽었다.
영빈관의 중계방송 준비도 사전에는 건물안 전기준비만 해놓고 방송국에는 15일 하오 5시가 넘어 통고했기 때문에 밤 10시 30분까지 준비가 진행됐다.

<분주했던 하야전야>
최 대통령은 사임전날인 15일 하루를 분주하게 보냈다.
이날 상오 10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했던 최 대통령은 당초 예정됐던 경축연회참석을 취소하고 청와대로 돌아왔다.
그 이후에는 낮 12시 국립묘지를 참배하기 위해 영부인 홍기 여사와 잠시 출타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3부 요인 등 중요인사들을 차례로 만나 사임사실을 사전통고하고 뒷일을 부탁했다.
이날 최 대통령이 만난 인사는 민관식 국회의장직무대리·이영섭 대법원장·박충훈 총리서리·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이희성 계엄사령관·이춘기 통대운영위원장·박영수 통대사무총장 등이다.
민주당전당대회가 끝나는 것과 맞추어 15일 하오 미국 측에도 하야사실이 사전 통고됐다.
최 대통령은 이러한 사전통고절차가 끝난 뒤 이날 저녁 최광수 비서실장, 김경원·김영준 특보, 정동렬·김창식·이경식·서기원 수석비서관, 정동호 경호실장직무대리 등 청와대 「스탭」들을 불러 사임사실을 미리 알려줬다.

<이사>
이사준비도 사전에는 일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16일 사임과 동시에 청와대를 떠나지 못하고 18일 이사하게 될 것이라고 관계자가 설명했다. 영부인 홍기 여사 등 가족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467의 5 사저로 이사할 예정이다. 서교동 467의5 최 대통령의 사저는 16일 새벽부터 7명의 인부들이 동원돼 칠단장을 새로 하고 잔디를 깎는 등 주인을 맞을 채비에 분주했으며 정·사복 경찰관 4명이 배치돼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대지 1백 10평·건평 92평의 2층 양옥은 지난 8개월 동안 서교동 파출소에서 경비만 맡아왔을 뿐 아무도 살지 않았기 때문에 쌓인 먼지 등을 털어 내는 등 대청소를 해야한다는 것.
사저의 관할 통장인 박태수씨(41)는 『대통령께서 많은 일을 하시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함께 살게돼 기쁘다』며 대통령의 건강을 축원했다.

<상가>
발표가 있기 10여분전부터 「라디오」와 「텔리비전」앞에 모여 웅성대던 상인들은 막상 성명내용이 「사임」이라는데 놀라움을 표시했으나 『어려운 시기에 고생이 많았다』는 고마움과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로 한동안 일손을 놓은 채 헤어지지 못했다.
서울 을지로6가 평화시장에서 식품상을 하는 이원발씨(42)는 『최 대통령이 복잡했던 시기를 무사히 넘겨준 데 대해 감사한다. 앞으로 누가 최 대통령의 자리를 잇더라도 우리와 같은 영세상인들이 마음놓고 장사할 수 있고 침체된 경기를 회복시키는데 노력을 쏟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종합청사>
상오 10시 청와대로부터 특별성명이 발표되기 시작하자 종합청사는 순간적으로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 기분.
대부분의 부처는 장관주재 국장회의를 간단히 마치고 삼삼오오 「라디오」와 TV옆에 모여 최 대통령의 사임성명을 경청.
공무원들은 10·26 이후 우리가 겪어야 했던 어려운 시련을 극복하고 안정으로 유도해 나간 중용과 슬기를 갖춘 훌륭한 대통령이었다면서 국민이 원하는 새 시대의 새 영도자가 부각된 이상 과도기적인 정치일정을 단축하고 하루속히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스스로 처신한 정치인으로서의 자세를 높이 평가한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간부들은 성명발표가 끝나자 각료들의 전원사표제출과 개각이 뒤따르지 않겠느냐는 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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