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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동물 우화집' 사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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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개도 무는 개를 돌아본다'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 동물에 빗대 인간사를 이야기한 속담들엔 조사 '도'가 빠지지 않는다. "동물도 이러하건대 하물며 사람이…"란 비교 강조의 뜻이 숨어있다.

그만큼 인간과 짐승은 뗄 수 없는 사이요, 사람은 동물이라는 생물학적 진리가 담겨 있는 비유다. 6월 22일까지 '동물 우화집'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은 지금 인간보다 먼저 지구에 출현해 인간 때문에 욕보는 동물들로 북적거린다.

중국 사진작가 양전종(35)이 찍은'닭가족'(사진)은 무려 스물 여덟 마리 닭과 병아리가 뼈대 있는 가문인 양 의젓하게 기념촬영에 임했다. 아들을 낳아 대물림을 해야 하는 중국의 대가족제도를 살짝 비튼 작가의 풍자정신이 보는 이를 웃음짓게 만든다.

미국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만(60)이 찍은 개 사진들이야말로 이번 전시의 제목인 '우화'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인간을 흉내내는 짐승들의 '상황적 희극'이 극장 무대처럼 펼쳐진다. 요염하게 엉덩이를 웅크린 뒷모습의 개가 살짝 뒤를 돌아보며 눈길을 보내는 장면에 작가는 '요정'이란 제목을 달았다.

여성 작가 카렌 크노르(49)는 박물관에 풀어놓은 원숭이들 사진을 '문화유산연구'라고 불렀다.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어슬렁거리는 원숭이들은 '예술가.모델.비평가.관람객'으로서 미술품과 대화한다. 단아하고 장엄하게 놓여있는 조각들 앞에서 감상에 빠진 원숭이 사진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기괴한 체험을 남긴다.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은"우리 인간은 고상한 속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육신의 틀이 지울 수 없는 비천한 출신이라는 오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썼다. 그 슬픔과 황량함을 사진에서 발견한 관람객은 초라함과 겸손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김중만.박홍천.윤정미.박연선씨 등 한국 작가를 비롯해 열한 개 나라 36명의 사진가가 내보이는 다양한 형식의 동물 사진 80여점은 탄생과 죽음으로부터 놀람.쾌락.공포.분노 등 인간사의 모든 것을 동물 속에서 표현한다. '동물우화집'에 선보인 사진들은 우리가 저들과 마찬가지 길에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02-720-066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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