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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 망치는 '막말 투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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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깨진 유리창 법칙’이라고 있다. 사소한 무질서를 방치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범죄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1982년 발표한 사회 무질서 관련 이론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7·30 재·보궐 선거 참패’ 이면엔 무질서가 존재한다는 분석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일부 초·재선 강경파 의원들의 누적된 막말과 돌출 언행이 무질서의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에는 좋은 일을 해주곤 했다.

 막말과 돌출 언행은 당 지도부도 말리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올해 초 열린 비공개 의총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최고위원의 발언 도중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일부 의원들이 “꺼져라!” “미친X” 등의 욕설을 했다. ‘예의 없는 의총’은 의원들 입을 통해 퍼져나갔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우리 당은 의총만 하면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부 강경파의 목소리가 너무 컸다”고 말했다.

 돌출 발언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엔 당시 초선의 홍익표 원내대변인이 박근혜 대통령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뜻하는 ‘귀태(鬼胎)’로 표현하면서 새누리당의 반발로 원내 일정이 중단되는 등 파문이 일었고, 그해 12월엔 장하나(초선·비례대표) 의원이 갑작스레 ‘대선 불복’ 선언을 해 비판을 받았다. 그때마다 당 지도부는 사태를 수습하느라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홍 의원은 결국 원내대변인을 물러나야 했고, 장 의원의 대선 불복 선언 때는 박용진 당시 대변인이 “개인적 입장일 뿐, 당의 입장과 다르다”며 ‘유감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새누리당으로부터 “야당이 대선 불복을 공식화했다”는 역공을 받으면서 수세국면을 자초하고 말았다.

 ‘마이너스의 입’은 선거 때도 불거지곤 했다. 2012년 총선 당시 서울 노원갑 김용민 후보가 과거 인터넷방송에서 “부시, 럼즈펠드, 라이스를 XX을 해가지고 죽이는 거예요”라거나 “노인네들이 오지 못하도록 지하철 계단을 하나로 만들고 에스컬레이터를 모두 없애면 된다”는 등의 막말을 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선거 판세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쳤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곤 청년비례대표 출신 김광진(초선) 의원의 이른바 ‘변태 트윗’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이 과거 자신의 트위터에 “술 먹을 때 채찍과 수갑 꼭 챙겨 오길, 간호사 옷하고 교복도”라는 등의 거친 성적 표현을 여러 차례 남긴 사실이 공개되면서다. 이뿐만 아니라 김 의원은 국정 감사장에서 백선엽 장군을 ‘민족 반역자’라고 했다가 비판을 받기도 했다.

 7·30 재·보선 직전엔 ‘유병언 가짜 시신설’까지 등장했다. 선거 하루 전 박범계(초선) 원내대변인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 감식에 입회한 경찰 관계자가 입회 직후 ‘외관상 유병언이 아니다’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한 게 논란이 됐다.

 초·재선들의 잇단 ‘사고’에도 불구하고 중진들은 말을 아끼고 있다. “당 지도부도 우습게 아는데 나서봤자 망신만 당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마이너스의 입’이 결과적으로 토론 문화와 당 기강의 실종을 불러오고 있는 셈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야당의 큰 문제는 여러 번의 무례한 언행 때문에 유권자들에게 수권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못 주는 것”이라며 “일부 의원들이 SNS에서 소수의 목소리만 듣고 강경하게 행동하는 악순환도 전체 유권자들에겐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이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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