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은 한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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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해 수재는 의외로 크다. 인명 피해도 엄청나지만 한 마을이 온통 묻히고, 휩쓸려 내려간 곳도 있었다.
이런 천재를 당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똑같은 원인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사실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가파른 비탈이나 허술한 지반은 빗물이 스며들거나 홍수가 지면 으레 무너지기 마련이다.
수재에 대비하는 것은 이런 너무도 당연한 원리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이번 수재에서도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가 무너져 내렸다. 그만한 비에 국도의 왕도가 마비되었다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어느 도로보다도 강하고 건실해야할 도로의 「백본」이 무너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경부철로선상 문제의 전의면과 전동면 구간은 상습적인 범람 하천과 불과 1천m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더구나 강둑보다 낮다. 철길 밑의 배수로는 겨우 4m 폭이었다. 강둑이 넘쳐 무너지면서 물길은 철로를 덮친 것이다.
5시간이나 막혀 있던 경부고속도로도 배수시설이 문제였다. 고속도로는 특히 자연지세를 끊고 뚫은 곳이 적지 않아 천재엔 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예측할 수 있는 재난을 당했다는데에 있다.
하천의 범람도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하상이 그 주변의 농경지보다 높은 지세에서 비가 오면 넘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보은읍을 휩쓴 홍수는 그 주변의 저수지에서 비롯되었다. 저수지의 생명은 수문과 제방에 있다. 바로 그 수문과 제방이 허술한 상태에서 집중호우를 맞았다. 특히 수문이 수량을 조절할 수 없었던데에 문제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제방은 약해 질 수밖에 없다. 삽시간에 불어난 수량을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의 수재가 천재라고는 하지만 원인들을 분석해 보면 오히려 인재의 경우가 더 많다.
문제는 앞으로의 대비다. 비는 해마다 올 것이다. 똑같은 원인에 의해 수재가 반복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막아야 한다. 대비책도 그런 원인분석과 원인제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런 노력은 오랜 시간 꾸준히 계속되어야 할 일이다. 장마가 질 무렵에 손을 쓰려면 이미 때는 늦다.
특히 신흥촌, 개발지구일수록 위험은 잠재해 있다. 지반도 그렇고 자연의 지세를 뒤바꾸어 놓은 것도 그렇다.
국토를 점검하고 그 바탕을 튼튼하게 다지는 일은 생활의 터전을 강건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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