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교의 대학사회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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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이규호 문교부장관이 한 TV와의 대담을 통해 밝힌 교육관·시국관, 그리고 세계관등은「학자」장관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행정」이나「정치」장관의 경우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학문적인 기반과 한 지식인으로서의 신념 위에 서서 기탄 없이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의 소신과 주장에는 응당 견해를 달리하는 입장도 있겠지만, 우선 우리의 교육현실·지식인 사회의 내면을 분석하고 인식하는 자세와 안목에 있어서는 수긍할 점이 적지 않다.
대학은 학문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대학에의 입학은 인격도야와의 일탈이 아니라 역시 그 시각이며, 교육의 과정에는 완성이 있을 수 없다는 전제들은 우리나라교육의 방향정립을 위해서도 적절한 이해이다.
사실 우리의 교육현실에 대한 진단은 그동안 무수히 거듭 되어왔다. 문교장관이 새로 바뀔 때마다 제시되는 새 교육정책들은 솔직이 말하면 철학의 결여, 이론의 미흡, 평가의 부재, 행정 만능의 사고 방식에 의해 명분도, 시행력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변화를 위한 변화, 공명을 위한 변화를 반복해온 인상이며, 이런 교육시책에 밀려 많은 무리와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교육 현실의 개선은 어느 한 장관의 노력이나 신념으로 이룩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문제의 정곡을 올바로 이해하는 작업과 자세는 절실히 요구되어온 것이다.
이 장관은 오늘의 대학생들이 갖고 있는 불만 요인을 우선 「대학 강의의 수준과 질」에서 찾으려고 했다. 엊그제 대학 강단에서 내려온 학자 장관으로서의 이와 같은 평가는 한결「리얼리티」가 있어 보인다. 입시 공부에 지치고 지친 학생들에게 학문적인 희열이나 기대감을 줄 수 없다면 그것은 벌써 「죽은 대학」이나 다름없다.
「아카데미」의 본산이나 다름없는 서구의 대학 사회에서조차 1960년대의 학생 시위를 통해 「죽은 학문」은 규탄의 대상이 되었었다. 하물며 우리 대학의 현실을 관찰하면 느끼는바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대학 사회의 벗어버릴 수 없는 책무이기도 하다. 대학인 자신의 노력과 성실성과 품위로 어느 정도는 극복되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일부 대학생 자신들의「관념적 허위의식」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용어만으로는 다소 모호한 느낌이 들지만 아뭏든 그는 충분히 성찰되지 않은 비현실적 관념들에 의해 조종된 고집스러운 폐쇄적인 의식을 비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떤 사상도 역사적 지속성·사회적 현실을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한다면 그것은 뿌리 없는 이상이거나, 위선 아니면 공리공론에 불과하다. 오늘의 수많은 인간, 복잡한 사회가 그런 위선과 공리에 의지해 과연 얼마나 지탱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 때문에 이념이나 제도나 사상은 「절대선」보다는 역사적 지속성 위에서 상대적인 가치에 뿌리를 펴고 있을 때 오히려 안정되고 또 건실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기존의 가치나 기존의 기반, 전통과 역사적 환경은 결코 무시당할 수 없다. 그런 연관과의 단절이나 부정은 파괴 아니면 긴장과 불안을 의미할 뿐이다. 단절은 일시적인 쾌감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농 삼을 수는 없으며, 결국은 단절의 단절과 같은 악순환의 타성에 빠지기 쉽다.
이 장관은 또「이데올로기」에 대한 평형 감각의 기피 현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른바 자본주의 체제의 약점은 지적하면서 공산주의의 무서운 결점에 대해선 외면하려는 일부 젊은 세대의 정신자세를 비관한 것이다. 스스로의 창의적인 노력을 정당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와 정치적인 강압에 의해 강제노동을 해야하는 사회. 그 선택에는 누구나 주저가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없는 우리와 같은 개발도상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자본주의의 미덕을 최대한으로 살리며 경제 개발을 이룩하는 일이다. 허황한 계급 의식의 고취로 공연한 분열과 파괴와 대립에 직면하면 우리사회는 다시금 정체와 질곡의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나라 안팎으로 하나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목표와 성취의 길은 그러나 아직 멀기만 하다.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 부터 살피는 일이다. 성급한 행동보다는 자생과 이해를 촉구한 애정에 유의하면서 대학 사회도, 교육 풍토도 새로운 방향 모색의 의미를 찾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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