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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당선자 첫날 동행 인터뷰] "자식은 달라진 세상 살게 … 주민 열망이 지역주의 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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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가 31일 고향인 전남 곡성읍에서 자전거를 타고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뉴스1]
이 당선자가 30일 순천 선거캠프에서 당선이 확실시되자 아내 김민경씨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부인 김씨는 지난 2011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아 그동안 외부활동을 자제해 왔으나 이번에는 남편을 도와 선거운동을 함께했다. [프리랜서 오종찬]·[뉴스1]

7월의 끝자락인 31일 전남 순천의 햇볕은 따가웠다. 그래선지 그의 얼굴은 까맸다. 체크무늬 남방과 면바지 차림인 그는 오전인데도 땀에 절어 있었다. 한국 정치의 고질인 지역주의를 깨느라 격전을 치른 흔적들이었다. “선거 때와 똑같이 오늘 새벽 3시40분부터 LPG 충전소와 대중목욕탕을 돌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당선 사례를 해서 그렇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7·30 재·보선 전남 순천-곡성에서 승리해 지역주의 벽을 깬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자 얘기다.

 순천시 왕지동에 있는 새누리당 전남도당 순천사무소 주변. 이 당선자의 이름 석 자를 따 만든 ‘이번엔 정말 현실이 됩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한 유세 차량이 제 할 일을 마치고 주차장 한쪽에 있었다. ‘순천 보은(報恩)’ 등의 당선사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이정현’이 적힌 붉은색 셔츠를 입은 청년 자전거 유세단 소속 20여 명이 밝은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오전 10시30분 이 당선자가 유세단을 격려하기 위해 사무소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말을 아꼈다.

 2004년 당 수석 부대변인에서 시작해 2007년 박근혜 경선 캠프 대변인, 청와대 정무·홍보수석을 지낸 그는 미디어에 능숙하다. 쏟아지는 질문에 “정치적인 얘기는 서울 가서 하겠다”고만 했다. 그러다 “지역주의 타파의 기수가 됐는데 이와 관련된 소감을 말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입을 열었다. 답이 길었다. 때론 주먹을 쥐고, 때론 목소리를 높이는 그의 말은 노트북으로 받아 치기 벅찰 정도로 빨랐다.

 “참 오랫동안 이어진 지역분할구도가 정치 발전에 어마어마한 걸림돌이 됐다. 방치되고, 유지되고, 심지어 정치세력들이 조장하고, 부추겼다. 이제 유권자 스스로 ‘우리는 그렇더라도 자식들은 달라진 세상에서 살게 해야 한다’는 열망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총선 대구에 도전했던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후보가 기록한 40.4%의 득표율, 부산·경남에서 생긴 균열 등 한 걸음씩 나갔다. 특히 순천은 앞선 시장 선거에서 2번(새정치연합 및 그 전신인 민주당)이 아닌 후보를 연달아 두 번 당선시켰다. 이번에 순천 시민과 곡성 군민이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는 위대한 첫 걸음을 걸었다.”

 그의 지역주의 깨기는 이번이 네 번째 도전이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민자당 후보로 광주시의원에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17대 총선(득표율 1.03%), 2012년 19대 총선(득표율 39.7%) 등 광주 서을에서만 두 차례 졌다. 19년 동안 네 번의 도전 끝에 역사를 썼다.

 선거 전략은 철저한 ‘바닥 훑기’였다. 순천에는 택시기사들이 이용하는 LPG 충전소가 세 곳이다. 이 당선자는 매일 새벽 3시 기사들의 교대시간을 이용해 그들을 집중 공략했다. 기사들은 홀로 낡은 자전거를 타고 유세하는 그에게 경적을 울리며 다가가 “고생이 많다”고 손을 내밀었다고 한다. 개인택시를 하는 이종만(64)씨는 “여그가 야당의 밭잉께, 갸들이 오기로 흠 있는 후보 공천해 놓고서도 (정권) 심판이나 타도밖에 야그를 하지 않았다”며 “이정현이는 순천대 의대 신설 등의 현안을 ‘자기밖에 할 수 없다’며 줄줄이 꿰고 있더라”고 말했다.

 2011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하는 등 암 투병 전력이 있음에도 지역에 내려와 도운 부인 김민경씨의 조용한 내조도 민심을 움직였다. 그는 이 당선자가 미처 못 챙긴 양로원 등을 돌며 유권자 의 손을 잡았다. 김씨는 “정치는 잘 모른다. 뒤에서 조용히 열심히 내조했다”고만 했다.

 이 당선자는 “1년10개월만 국회의원을 해도 좋으니 머슴으로 써 달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당선은 중앙 정치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게 분명하다. 자신도 부인하지 않았다.

 -지명직 최고위원 후보로 거론된다.

 “하고 싶다고 하는 자리가 아니잖느냐. 당 지도부가 되든 아니든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누구보다 앞에서 목소리를 낼 거다.”

 -특별히 못마땅한 게 있나.

 “국회의원이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한다. ‘배겨날 사람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차없이…. 반대로 묻는다. 만약 국회의원 300명에 대해 한 사람 한 사람 청문회를 하면 스스로 부끄럼 없다고 할 수 있는 이가 몇 명이나 되겠나. 의원들의 자성과 자기 혁신이 최우선이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실질적인 정치 행위도 부족했다. 새누리당이 대구·경북이나 부산·경남에 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예산을 반영하기 위한 당정회의를 하듯이 지도부가 순천에, 여수에, 광양에 찾아와야 한다. 선거 때는 오지 말라고 했지만 당선된 이제부터 호남으로 지도부를 끌어내릴 거다.”

 -지역주의를 깨는 선두주자로, 선거구제 개혁 논의를 어떻게 보나.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당에 가서 의견을 제시하고 당론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소신을 밝히겠다.”

 다음 일정으로 떠나려는 그에게 “박 대통령으로부터 축하 전화가 왔었느냐”고 슬쩍 물었다. 그는 부인하지 않은 채 미소만 지은 뒤 수행원에게 “다음 일정이 어디지?” 하며 자리를 떴다.

순천=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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