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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의 어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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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자의 해자를 보면 「숙」자는 심연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이것만으로는 무슨 영문인가 싶지만 『전전긍긍하며 몸을 움츠린다』는 풀이를 보면 짐작이 간다.
「숙」자는 실제로 20여 가지의 의미로 통한다. 흔히는 『공경할 숙』이라고 한다. 그러나「엄숙하다」는 뜻에서부터 「으시시하다」, 「움츠러든다」, 「죽인다」는 뜻까지도 있다. 여람의 『맹추』엔 숙은 곧 『살이라』는 주역이 붙어있다.
소리(성)의 하나로 「숙」이라고도 한다. 영시에서「숙숙」이라면 바람 (풍) 소리다. 소나무 사이를 스치는 바람을 「숙숙」이라 표현한 글귀도 있었다.
『숙정』이라는 말은 중국고전 『신서』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신서』란 중국영대의 학자 매??? 천자에 대한 상주문을 비롯해 정치·도덕·학문·풍속 등에 관한 논설을 편찬한 책이다. 가의는 기원전 2세기 때의 사람이다.
비슷한 한문으로 「숙청」이라는 말도 있다. 엄히 다스려 부정을 없앤다는 뜻이다. 영서『위현부』에 처음으로 쓰였다. 「숙정」이란 말이 쓰인지 3백년 뒤의 일이다. 내력으로 보면 「숙정」이 더 관록이 있다.
영어에도 이와 유사한 단어가 있다. 「퍼지」(purge)가 그 경우다. 어원을 보면 「정화」(pure)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다.
이와는 달리 국내의 영자신문들은 「클린업」이나 「퓨어리파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클린업」이라는 말엔 깨끗하게 쓸어 낸다는 여운이 있는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신라 때 사정부가 있었고, 경덕왕(재위742∼765)때 그것을 「숙정대」로 개칭했다. 관원은 영1명, 경2명, 좌2명, 대사 등이 배치되었다. 「영」이라면 지금 직급으로 「1급」쯤 될 것 같다.
이조에 이르러서는 「염근리」, 「청백리」라는 것이 있었다. 청렴한 관리를 높이 부른 말인데, 죽은 뒤에 뽑힌, 이런 관리를 「청백리」라고 했다. 오리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청렴·결백한 관리를 높이 칭송하는 일도 뜻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청백리」나 「염근리」는 그리 쉽지 않은가 보다. 태조에서 순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5세기동안 청백리로 뽑힌 사람은 물과 2백20명 정도다. 2년 남짓만에 한 명씩인 셈이다.
중종 때는 암행어사가 나타나 이른바 고위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했다.
익히 아는 얘기지만 암행어사에 의한 숙청은 악정에 시달리던 서민들에겐 더 없는 쾌사였다.
정작 우리의 바람은 「숙정」이란 말조차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2천년도 더 된 해묵은 한자가 아직도 쓰여야하는 세태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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