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의 일체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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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달 21일 생포된 북괴무장간첩선장 김광지(42)이 갖고 있던 4「페이지」로 된 손바닥크기의 수첩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부자 사진을 같은 크기로 좌우에 나란히 실었고 또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에게 끝없이 충실한 근위대 결사대가 되자』는 글귀가 들어있는 사실을 가지고 일정의 정보 가치시 되는 바이다.
이 증거물이 말하고 있는바와 같이 오늘의 북한권력구조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부자체제라는데 특성이 있다. 김일성의 생일달인 금년 4월중에 발행된 평양의 「노동신문」 사설들을 보면 김일성과 김정일은 인간적 존재로서는 두 사람이지만 정치 사상적 내지 권력체제상으로는 완전히 일체화된 유일 인으로 되어있다. 바꾸어 말하면 김정일은 김일성 주의자로서의 모든 요건을 완비한 자이기 때문에 김일성 주의의 정당한 상속자라는 것이다.
김정일을 이 세상 둘도 없는 적격의 김일성주의 상속권자로 내세우는 까닭은 요컨대 주술화된 김일성주의의 종교적 신앙토양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종교적 상속권자의 경우는 단순한 혈족적 관계로 되는 것도 아니며 더구나 이교도의 경우는 불가능한 것처럼 김일성주의를 상속함에 있어서도 마땅히 절대자 신앙의 광신자라야만 할 것이다.
북한은 이 세계에서 가장 철저히 밀폐된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보지도 못하고 직접 조사도 못하지만 생포된 북괴 무장간첩 김광췌의 소지품에 의하여 한가지 분명해진 사실은 모든 사람이 김일성 김정일 부자숭배의 수첩을 반드시 휴대해야 하고 또 이자들의 어록을 일상적으로 주문 외듯이 중얼대야하는 것이다. 그 곳은 온통 권위의 미신, 곧 우상숭배의 천지로화 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전역에 3만5천 개에 이르는 김일성의 동상·석고상·대리석상을 세워놓고 오가는 주민들로 하여금 그 앞에서 머리 숙여 배례케 하며 마치 원시종교의 주문 외듯 절대자 김일성의 「교시」를 암송케 한 후 소위 절대성과 무조건성의 충성을 맹세케 한다.
공산주의를 한답시고 이처럼 원시 종교적 방식을 적용한 사례는 공산주의역사에 일찍이 없었다.
이렇듯 우상화된 김일성의 후계자를 장남인 김정일로 책봉하는 데는 물론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첫째는 봉건왕권도 아닌 공산당의 당권을 계승함에 있어 단지 독재자의 장남이라는 조건만으로 자격이 굳어진다면 이는 누구에게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만일 김정일이 김일성의 장남이 아닌 자로서 오랜 정치경력을 통하여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그 사실 자체에서 권력승계의 모범을 찾고자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김정일은 간고 한 혁명투쟁의 경력을 쌓아 올린 자가 아니고 다만 합법적 당관료 생활만을 했을 뿐이다. 그것도 그의 생일이 1940년 2월이기 때문에 그리 긴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정일을 당권 승계자로 옹립한 이유는 독재자 김일성이 너무 오랫동안 절대자로 군림하는 바람에 그 동안에 우수분자는 모두 제거되었고 살아있는 자들도 권력서열10위까지의 자들은 오늘 현재 평균연령이 벌써 69세6개월이니 이미 연로하여 쓸모가 없게 되었으며 새 시대에서 뽑자니 김정일과 김일성의 장기 공모자들을 사후격하하지 않고 그 체제유산을 그대로 지켜나갈 숙명적 승계자는 결국 장남 김정일밖에 없다는 선에서 결정된 것이라 본다.
어쨌든 오늘날 북한에서 현실적 제2인자로 굳혀진 김정일이 오는 10월의 제6차 당대회에서 어떤 형식으로든지 그 위치를 양각시키게 될 것이라는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김일성 이름 다음에 김정일의 이름을 가져다 놓는 표현은 삼갈 것으로 보인다.
만일 오늘이라도 돌연한 김일성의 유고에 의하여 김정일 체제로 바뀌는 경우 북한의 노동당은 「이데올로기」체제·전략전술에 있어서 변화가 올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으로는 김일성 노선의 준수와 견지를 맹세하게 될 것이겠고 젊은 지도자에 의한 활성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김정일은 선임자의 「영광」이 컸던 관계로 자신의 존재가 그에 깔려서 돋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과민하게 관심하고 새로운 독재자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어떤 모험을 시도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정일의 그와 같은 개인 영웅주의적 모험은 어쩌면 남북한 관계에 국적인 도발을 시도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자신의 상징조각을 남북통일에 결부시켜왔기 때문에 아마도 이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무엇인가 모험을 벌이고자 할는지 모른다. 만일 김정일이 중·소의 영향력 행사에 대하여 잘못 대처하게 되면 김정일의「리더십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김정일 체제의 존폐로까지 번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 체제의 불안정성은 단지 이것만은 아니다. 김일성의 장기 독재를 통하여 억제된 민중의 불만도 불만이지만 「인민군」 소장파들의 동향도 문제일 것이다. 비록 김일성의 생시에 김정일의 후계기반이 조직적으로 굳혀지기는 했지만 김일성 사후에도 확고부동하다는 보증은 있을 수 없다.
김창순<북한연구소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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