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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당할 수도 짓밟힐 수도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그 날 아침
부지런한 사람들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낚시터로 떠나고 등산을 갔지만
우린 잠자리에서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 날 아침애드 안식의 종소리는 울려 퍼지고
보채던 아기도 다시 잠들었는데
저주받은 공포의 죽음이 밀어닥치는 소리
피보다 진한 이데올로기를 앞세우고
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우리의 뒤통수를 걷어차며
목덜미를 짓누른 카인의 후예들
송곳 같은 장총의 예리한 총검은
여인의 젖가슴을 찔렀다
미쳐 날뛰는 따발 총성에
젖먹이도 피 흘리며 쓰러졌다
신의 손길이 닿은 축복 받은 모든 것이
사탄의 파괴가 자행되었다
동족을 밀어붙여 죽이고
국보를 때려부수고
양식도 깡그리 불살라버린
이 엄청난 세기의 노략질을
나는 똑똑히 망막에 새겨두고 있다
우린 아름다운 것만으로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것이
우린 착한 것만으로는
평화를 지탱할 수 없는 것이
우린 진실만으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것 이
틈만 생기면 덮치려드는
약하면 사정없이 달겨드는
이리떼의 검은 심보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제 우리 두 번 다시 당할 수는 없다
1950년6월의 네 번 째 일요일처럼
무참하게 짓밟힐 수는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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