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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와 자제로 난국을 이기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국 「리치먼드」에 있는 한화공약품 회사의 기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인입니다. 비록 외국에 살고 있지만 나의 조국이 안정되고 내나라 경제발전이 지속되어 [한국인]임을 뽐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광주사태를 비롯한 요즘의 국내소식이 그렇지 않아도 근심스러운데 미국에 이민 와서 사는 몇 사람의 「한국인」이 우방대통령관저 앞에서 『주한미군 철수하라』고 외치는 사태를 보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기에 주한미군을 철수하라고 주장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조국의 사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외국정부에 대해 그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대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초가을 사업관계로 우연히 [미시간] 주의 [랜싱]에 있는 기술초급대학을 돌아본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화공학과 실험실 복도에서 걸레질을 하고 있는 남루한 동양인을 보았습니다.
같은 [아시아]인이라 그랬던지『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서 자기는 월남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나온 [Boat People]d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 전직각료의 이름을 대면서.『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더니 8년 전 서울에 가서 만난 일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마 월남정부의 관리출신인가 보다고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한 학교간부가 패망 전 월남정부의 차관이었다고 했습니다.
순간 저의 감정은 착잡했습니다.
[사이공] 함락직전까지도 자유를 달라고 외치던 종교인들과 학생들이 지금 공산치하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그 차관의 증언을 듣지 않아도 명백합니다.
이 월남의 전직차관은 공산화된 [사이공] 거리를 극적으로 빠져나와 밀림지대에서 괴로운 4년을 보내다가 가족을 잃은 채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왔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같은 이방인들이지만 월남인들이 경영하는 구멍가게의 을씨년스런 풍경을 볼 때마다 착잡한 심경을 갖는 것이 비단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도 「미시간」주의 한적한 대학「캠퍼스」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있을 키 작고 눈 큰 그 패망월남의 전직차관의 당혹한 표정이 뇌리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데모] 하고 파업하는 자유를 얻으려했던 그 순진한(?)월남인들이 오늘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안정 없이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지난날 경험에서, 그리고 월남에서 똑똑히 보았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똑바로 보고 인내와 자제로 난국을 이겨나가는 슬기로운 민족의 역량을 과시하여야할 때라 믿습니다.
김영식<42.P.O.Box9547.Richmond.Va.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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