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통금없는 청주"에 새명물 「밤참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새벽2시의 청주시. 어느 큰길가의 조그만 밥집. 목로집 특유의 문휘장사이로 하얀 불빛이 새어나와 포도한 구석의 방을 쫓는다.
밥집안은 또다른 세계. 환한 형광등아래 놓인 대여섯개의 식탁주위에 십여명의 사람들이 두셋씩 모여앉았다. 족발·순대에 소줏병, 혹은 국밥이나 김밥을 앞에 놓은 사람도 있다. 한밤중답지않게 북적대는 분위기, 들고나는 손님들로 마치 초저녁같다.
건너편 골목안, 또 하나의 불빛을 따라 문을 연다. 대학생같은 청년들이 많다. 콧노래 소리, 열띤 토론, 속삭임소리가 얼큰한 안주내음과 함께 밀어닥친다.
-『야식집을 둘러보지 않고는 통금없는 청주를 말하지 말라』-.
하루에 네시간씩은 「대한민국속의 이방」이 되는 「무통금지역」청주의 한 풍물을 나타내는 말이다.
「야식집」은 청주의 뚜렷한 명소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내의 야식집 수는 40여곳. 「올빼미」「호박집」「미리내」「밤참집」「박꽃」…. 옥호도「밤」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다. 영업시간은 남이 문을 닫는 하오10시부터 이튿날 상오6시까지. 11시쯤이면 좌석이 거의 차고, 새벽2시까지가 말하자면「러시아워」다.
「메뉴」도 밤참의 분수에 걸맞게 「오뎅」국물로부터 닭갈비·「우동」·깁밥·족발·순 대·묵·두부·오징어안주와 국밥·소주등 소박한 서민음식들이다.
밤새 2∼3차례 손님이 바뀌고 2시를 넘으면 손님이 대개 끊기지만 단 한사람이라도 시간에 쫓겨 내보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항상 아침 해장손님까지 맞게 마련이다.
청주의 야식집은 어제오늘 생긴것은 아니다. 지난63년3월1일 충북이 통금권에서 벗어난후 5년쯤 뒤인 68년에 처음 생겼다는 것이 「원조」를 자부하는「호박집」주인 오익수씨(36·탑동325)의 설명이다.
야식집의 출현은 통금에 쫓겨 차잡기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어진 주민들에겐 어쩌면 자연스런 필요의 소산이었다. 시간을 묻지앉고 느긋이 마시고 싶은 술꾼, 밤이 짧기만한 「데이트」청춘, 젊은 친구들, 그리고 누구보다도 통금없는 도시에서 밤일을 하는 운전사와 공장근로자들이 모두 단골들이다. 긴 겨울밤 출출한 배를 달래며 오순도순 나눠먹던 「밤참」이 상업화된 것이다.
처음엔 야간통행자가 적은데다 밤참집의 존재를 몰라 주로 주차장부근에서 밤영업을 조금씩 연장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리어카」1대, 대형천막 1개, 그릇 몇점으로도 시설을 갖출수 있으며 허가절차가 덜 까다롭고 가족만으로 운영할수 있는데다 갈수록 새벽 통행인이 늘고 또 일정한 장소에서 문을 열어 언제라도 찾을수 있게되면서 해마다 5, 6개소씩 늘어 40여곳을 헤아리게 됐다.
특히 지난해 소년체전이후 전국적으로 알려지기 시작, 청주를 찾는 여행자는 새벽에 한번쯤 들르는 명소가 됐다. 요즈음 새벽까지 운행하는 「택시」만도 2백여대가 넘어 운전기사들이 빠짐없이 찾는데다 단골로 애용하는 젊은 「밤참꾼」들이 늘어 어느 곳이나 성업중이다.
야식집이 늘게되자 벌써 일부 야식집에선 특성화에 착안, 여성회관옆의 야식집과 「거창집」은 운전사 위주의 국밥으로, 「호박집」은 대학생등 젊은이가 찾는 술과 안주위주로,「미리내」는 대학생위주의 국수·떡볶이·「오뎅」등에 주력, 단골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40명 좌석의 「호박집」의 경우 가장 잘되는 늦가을부터 겨울사이엔 하루평균 매상이 4만원정도. 박리다매 원칙이어서 11년동안 야식집을 했어도 집한칸 마련 하지못했다는 주인오씨는 돈보다도 『밤 늦도록 일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주고 있다는 보람』이 야식집을 그만두지못하는 고집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회사일로 출장올때마다 야식집을 들러간다는 임상철씨(42·서울성동구군자동125)는『밤참집에 올때마다 고향집생각을 하게된다』며 청주에서만 맛볼수있는 낭만으로 이제는 단골손님이 됐다고 말했다. <청주=최근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