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라져 가는 「프랑코」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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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느 때나「프랑코」는「헬리콥터」를 타고 지방시찰을 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지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가 곳곳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폐다발을 내어 공중에서 뿌렸다.
여러 차례 그 짓을 하던「프랑코」는 보좌관을 돌아보며 물었다.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데 어떻게 하면 모두를 도울 수 있을까?』
보좌관이 대답했다. 『그런 길이 있지요. 돈 대신에 각하가 뛰어내리시면 됩니다.』지금 「스페인」에서는「프랑코」를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농담들이 수없이 많이 퍼져있다.
「마드리드」대학에서 만난 한 여학생은 2년 전만 해도 사람들 앞에서「프랑코」욕을 했다가는 어느새 경찰에 연행되었을지 모른다고 말하면서『이제는 모두들 큰소리로「프랑코 농담」을 하고 같이 웃는다』고 말했다.
4년 동안 완만하게 진행되어 온 탈 독재계획의 깊이를 독재자에 대한 이런 야유조의 농담에서만 측정하려든다면 무리 같지만 오늘의「스페인」이「프랑코」시대로부터 얼마만큼 멀러 탈출해 나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상적인 증거로는 충분한 것인지 모르겠다.
「프랑코」가 사망하기 직전대학의 벽에 『「프랑코」타도』라는 구호를 썼다가 경찰에 발각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 어느 학생의 죽음, 또한「프랑코」낙서를 사진 찍다가 곤욕을 치른 외국기자의 경우 등을 생각하면 그때부터 오늘은 엄청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평균적인 독재자와는 달리「프랑코」는 자신의 족적을 남기기 위한 외형적인 우상, 예컨대 자신의 동상 같은 노골적인 우상들을 별로 만들어놓지 않았다.
그래서 사후 독재자의 동상이 민중에 의해 파괴, 오손 당하는 것과 같은 추한 모습이「프랑코」사후의「스페인」에서는 벌어지지 않았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우상으로서는「바티칸」의 악「피터」성당을 능가하는 거대한 지하성당과 그 위에 솟은 전장 1백50m의 세계 최대의 십자가가 있다고「프랑코」는 내란 때 죽은 반란군의 시체 6백여구 및 「팔랑헤」당의 첫 당수「호세·안토니오」와 함께 이곳에 누워있다.
「프랑코」는 이곳을 자신이 키운 체제에 바탕을 둔 거국적 성소로 만듦으로써 일종의 영생에의 꿈을 실현하려했던 듯하다.
그러나 기자가 이곳을 찾아갔을 때 정문에는 기관총을 든 군인들이 서있었다.
안내원은「프랑코」에 원한을 품은 사람들이 이 성당을 파괴하러들 것에 대비해서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장군인이 지키지 않고는 잔존하기 어려운 이 독재자의 기념비를 쳐다보면서 그것은 영생보다는 죽음의 완벽성을 확인해주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코」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외형적 유산은 도로 이름이다.
「마드리드」의 제일 넓은 도로의 이름은 지금도「총통가」다. 마찬가지로 다른 대 도시에도「프랑코」가란 길 이름을 대개 하나씩은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이것들도 개혁의 물결에 의해 씻겨나가고 있다.
지난해 4월에 실시된 지방선거는「프랑코」의 거리이름을 원상 복구하는 일을 공약 중의 하나로 내건 반「프랑코」파 정치인들을 대거 진출시켰다.
그 결과「프랑코」말기에 용기있게 독재체제를 공박한 경력으로 사회노동당의 실력자가 된「마드리드」대의 철학교수「갈반」이「마드리드」의 시장으로 들어섰다.
제2의 도시「바르셀로나」를 위시해서「발렌시아」「알리칸테」등 큰 도시들도 모두 반「프랑코」정치인들 손에 넘어갔다.
이들은 선거공약에 마따 거리 이름을 바꾸어 가고 있다.
내란 중 부모들이 공화파에 의해 총살당했다는 한「프랑코」파 노인은『그래도 거리이름을「레닌」가나「마르크스」가로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쁠게 없다. 사람의 이름이란 어차피 거리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체념했다.
이런 여러 가지 평범한 현상들을 통해서 2세대란 오랜 세월을 국민들 위에 군림해온「프랑코」의 기억이 이제 말끔히 제거되고 있음을 분명히 감지할 수 있었다.
「프랑코」의 기억이 이처럼 사라져 가는 것이 그가 상징해온 체제의 사멸을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보기는 불충분한 것이지만 적어도「프랑코」란 이름이 국민들 마음에 심어 놓은 「터부」성 때문에「프랑코」지지파들 조차도 그의 기억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들지는 않게 된 것 같다.
다시 말해서「스페인」에서는 민주화노력에 설혹 일보 후퇴를 하게 될 경♀가 있더라도 「프랑코」로의 복귀까지는 갈 수 없다는 것을「프랑코」농담』의 유행현장은 말해주는 것 같다. 【장두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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