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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정화작용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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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맑은 액채. 약 알칼리성. 98%의 수분과 소량의 소금·단백질·인산염. 이것은 사람의 눈물이다.
정상인이 눈을 뜨고 지내는 16시간동안에 분비되는 눈물의 분량은 겨우 0·6㏄에 불과하다. 1g의 3분의 2정도. 여자의 누선은 남자보다 조금 트다. 갓난아기는 3, 4개월이 되기까지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
눈물을 흐르게 하는 것은 문감신경과 안면신경. 감정이 격해서 흐르는 눈물은 이들 정신에 의한 작용 때문이다.
눈물 속에는 라이서자임이라는 효소가 있어서 소독의 역할을 한다. 세균의 침범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눈물 속의 그 무엇도 마음의 아픔, 마음의 충격을 막아 주지는 못한다.
세상엔 눈물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철의 비정인으로 알려진 스탈린도 그의 것 아내가 죽었을 때는 혼자 흐느꼈다는 기록이 있다. 사람의 품성이 어느 한구석에라도 남아있으면 그에겐 눈물이 있고, 흐느낌과 슬픔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세인의 눈에 띄느냐, 않느냐가 사람에 따라 다를 뿐이다.
그러나 세상엔 속으로 우는 사람도 많다. 가벼운 슬픔은 오히려 눈물이 흐르지만, 큰 슬픔은 마음속으로 저며들어 눈물조차 흐르지 않는다. 침묵이 곧 눈물이다.
하루0·6g정도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누구나 호화롭고, 안수하며, 무사하고 행복한 것일까? 우리의 일상은 그처럼 산술적이고 단순하지는 않다. 생리적으로 신수상의 병증이 없는 사람의 눈물은 36·5내지는 37도(섭씨)의 온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차가운 눈물도, 뜨거운 눈물도 있을 수 잇다.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눈물로 강철도 녹일 수 있다』고 했었다.
사람은 오히려 눈물을 흘릴 수 있기 때문에 통한지도 모른다. 눈물 없는 사람은 차갑게 죽어가지만, 눈물이 있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그야말로 강한 사람이다.
롱펠로는 이렇게 노해했다. 『침착하라, 슬픈 마음이여. 탄식을 멈추어라. 구름 뒤엔 아직도 햇빛이 빛나고 있거늘.』.
작은 일상에서부터 크고 큰 역사의 여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슬픔을 여미고 살아간다. 슬픔도 나누면 가벼워진다는 말이 있다. 남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은 곧 남의 슬픔을 나누어 갖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그런 마음가짐이 우리에게 더 없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눈물의 카타르시스(정화작용)를 통해서나 겨레가 하나가 될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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