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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평론가의 잘못된 고증을 고발한다|신규호씨의 지난주 TV주평을 읽고- 신봉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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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이 주평과 같은 짧은 글에 일일이 의견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증을 운운하는 글이 전혀 사실과 어긋나고 있으면 평자의 무지는 고사하고라도 독자나 시청자를 위해서 정사의 기록을 예증하여 역사적인 사실만이라도 밝혀 두고자 한다.
첫째, 『장복의 검은 각대를 흰 각대로 해야 한다』는 대목.
노산군일기 (단종실록)총서 문종 승하일에『석막을 올리고 종친과 문무백관이 백의·오사모·흑각대로 곡임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문종 상에 백관이 상복차림이 아닌 것은 잘못』이라는 대목. 아무리 상중이라 해도 새 상감이 고위 하는 의식에는 조복을 입는다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노산군일기 고위년 5월18일(즉위날)조에『종친과 문무백관이 조복으로 갈아입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고운님 여의옵고』에 있어서 18회분(4월19일방송)은 고위일임을 알리는 자막과 해설이 있었다.
셋째, 『당시의 사모에는 뿔이 달려 있지 않다』는 대목. 알기 쉽게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행한 조선시대 초상화집에 당시의 인물들인 황희 신숙주 등이 모두 뿔이 달린 사모를 쓰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노산군일기 원년10월10일조에『김종서가 나오기 전에 세조(수양대군)는 사모뿔이 떨어져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네째, 『한명회·권얼의 집이 금제에 벗어나게 큰 것이 잘못』이라는 대목. 한명회의 조부인 한상질은 예문관 대제학이요 문열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명신이며, 권얼의 조부 권근은 여말에 진신관·예문관·보문각의 삼첩학을 지낸 바 있는 대학자이며 길창군에 피봉된 명신이다. 이와 같은 한상질· 권근의 친손자인 한명회· 권얼의 집이 금제에 해당될 이유도 없거니와「스튜디오」에 세워진 2,3평 짜리 「세트」를 크다고 하는 것은 「난센스」 에 가깝다.
다섯째, 『여자는 제의견 따위를 주장하면 안 된다』는 부례가 엄했다는 견해에 대해. 조선조의 여성에게 유가의 법도를 적용하는 것은 여성의 개가를 금지한「경국대전」이후부터다. 「경국대전」이후라고 하는 것은 성종조 이후를 말한다.
조선조 초기에 있어서의 여성은 여말의 여생풍속과 연결되어 있어 조정은 늘 골머리를 썩혀 왔기 때문에 「경국대전」에 여성을 속박하는 조항을 넣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시 여성들의 분방한 모습은 얼마든지 사료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아야겠다.
여섯째, 『안평을 호색한으로 그렸다』는 대목. 안평을 호색한으로 그리고 있지는 않다.
다만 안평의 집에 수많은 궁녀가 있었고 그를 궁녀가 거처하는 곳은 서궁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뿐이나, 안평의 여자관계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는 것은 왕조실록(노산군 일기)원년 10월25일조에『용(안평대군)이 성령대군의 후사가 되어 성령부인 성씨 (안평에게는 작은 어머니가 된다)를 간통하였고, 세종 때에는 궁의 담을 넘어 두어 계집종을 간음하였으며, 또 세종2년 안에 여러 소인배와 철복차림으로 마을에 나아가 간음하여 남의 아내와 첩을 빼앗은 것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상피도 가리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은 야사도 아닌 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일곱째, 『김종서를 역신 취급하였다』는 대목. 이「드라마」에선 아직 역신 취급을 하지 않았지만 수양의 입장에서 보면 역신이 된다.
때문에 정원일기나 왕조실록은 계유정난 이후의 김종서를 역신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세종 조에 있어서의 김종서는 명신으로 기록된 것이 사실이다.
어떤 정변을 기점으로 역사적 인물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 노산군 일기의 평가도 문제가 된다.
노산군 일기는 계서정난을 합리화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산군 일기를 전면적으로 무시할 수 없다. 바로 이점이 역사적 기록을 읽고 해석하는 어려움이다.
여덟째, 『한명회의 성격이 가당치 않다』고 한 대목. 지금까지 발표된 거의 모든 작품에서 한명회를 단역으로 쓰고 있었으며, 희대의 간신으로 그려 놓고 있기 때문에 한명회의 전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드라마」는 한명회의 전 개인사를 추적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노산군 일기」 「세종실록」「예종실록」 「성종실록」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백여처의 정사기록과 「대동야승」 총화책에 적혀 있는 51개처의 야사기록, 그리고「갑자오교청주한씨족보」에 기록된 한명회의 가계까지를 사실에 따라 추적하고 있다.
더 구체적인 것은「월간중앙」4월호에 실린 필자의 수필『압구정』을 참고해 주기를 바란다.
사실의 기록이 이러함에도 「고운님여의옵고」의 이야기는『거개가 「픽션」이며 맞는 것이 있다면 이름뿐』이라고 단정한 것은 짧은 식견으로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역사적 사실마저도 잘못 인식케 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저자=방송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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