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사 70m 짜리 9층 목탑 복원키로|불국사의 8배 규모…드러난 유물만도 2만 여점|발굴 작업 끝내면 사역을 가꿔 사지 공원 만들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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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나라 최대의 사찰이었던 황룡사 터에 대한 발굴 조사 작업이 종반에 접어들었다. 문화재 관리국 문화재 연구소 경주 고적 발굴 소 사단이 경주시 구석동 4만여 평의 황룡사지 발굴 작업을 시작한 것은 76년4윌. 올해로 5년째를 맞은 발굴 작업으로 황룡사 전체 규모가 밝혀졌으며 이를 토대로 하여 발굴이 끝나는 대로 사지 공원을 만들 계획이다.
5년째 접어든 발굴 작업 중간 결산
『삼국사기』 와 『삼국유사』등의 기록에 따르면 삼국 신라 시대의 대 사찰 황룡사는 결을 짓는데 90여 년이 걸렸다고 돼 있다.
황룡사는 삼국 신라·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때까지 호국 사찰로 그 기능을 다 하다가 고려 23 고종 5년(1238년)에 불타 없어졌다.
발굴단은 4월초까지 금당터·목탑터·강당터 등 사찰 중심부의 건물터와 절을 둘러싸고 있었던 회랑터·담장터 등의 발굴을 끝냈다. 현재는 발굴이 끝난 곳에 대한 2차 정밀 조사와 부속 건물터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그간의 발굴 결과 황룡사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큰 사찰로 불국사의8배 규모였으며 일반 사찰 형태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건물 양식을 지니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강당터의 규모는 가로 폭·2m,세로 15·9m(3백38평). 현재 남아 있는 각 초석의 동서간에는 초석 적심 석이 노출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초석은 당초의 기단 흙을 파내고 적심 석을 묻어 배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전면 개축한 적이 있음이 확인됐다.
금당터는 가로 45·1m, 세로 20m(5백7평)로 기존 기단의 1m아래에 4방으로 기존 기단 위의 초석과 기둥 사이를 맞추어 일렬로 초석이 배치된 낮은 기단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목탑터의 규모는 기만의 가로 및 세로가 29·1m(2백55평)로, 남쪽에 3개소, 동쪽에 1개소의 계단터가 있었음이 확인됐다.
회랑터는 강당의 동서를 바로 회랑이 연결하지 않고 부속 건물이 그 사이에 세워져 있었던 것이 드러났으며 서쪽 회랑지 일부는 복랑으로 축조됐다는 것이다. 회랑의 길이는 동서1백33m, 동남1백2m, 서남1백30m로 밝혀졌다.
이외에도 중문터(1백평),서 건물터 (95평), 금당 서편 건물터 (2백19평), 남문터(1백 평), 동서북 승방터 등이 확인됐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역 규모는 동서 2백88m,남북2백81m로 면적이 2만4천4백80평.
그간의 작업 결과 수습된 유물은 모두 2만1천7백87점으로 와전류와 금속류·용기류 등이 가장 많다.
그동안 발굴을 위해 동원된 연 인원은 5만7천5백93명이고 소요 예산은 3억원.
황룡사 터 조사는 절터 자체만을 확실하게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목탑 복원 문제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9층 목탑의 높이는 70여m로 30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다.
문화재 관리국은 탑을 복원할 경우 남아 있는 유적을 다치지 않기 위해 심초석이 현존하는 곳 이외의 장소에 세울 예정이며 순수 목탑으로 세울 것인지, 관광용을 겸한 「시멘트」 탑으로 복원할 것인지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문화재 관리국은 오는 83년까지 8년에 걸친 발굴 작업이 모두 끝나면 사역 전체를 정화하여 사지 공원으로 조성하고 9층 목탑 등 일부 건물은 복원, 명실 공히 세계 최대의 사찰이었던 황룡사 터를 한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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