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20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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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일은 4·19학생혁명 20돌. 민주와 정의를 부르짖는 학생들에 의해 12년 독재정권이 무너진 민주도정의 첫 이정표였다.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고 길이 계승하기 위한 기념식이 19일 상오 전국각지에서 일제히 거행됐다. 서울에서는 세종문화회관변관에서 이한빈 부총리등 3부 요인인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고, 서울수유동 4·19묘소와 전국 각대학에서도 기념식이 거행됐다. 서울 수유동 4·19묘소에서는 18일하오 민주의 꽃을 피우기 위해 숨져간 영령들을 위로하는 제례가 올려졌다. 4·19묘소에는 19일 이른새벽부터 비·바람이 부는데도 많은 인파가 몰려 4월혁명때 숨진 젊은 넋을 추모했다.

<4·19묘소>
4·19희생자 제20주년 추념식이 19일상오11시30분 서울수유동 4·19묘소기념탑앞에서 4·19의거상이자회, 4·19의거희생자유족회, 4·19 회원과 각대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20년전 독재에 항거해 산화했던 숭고한 넋을 기린 추념식은 영령에 대한 묵념과 헌화등으로 20분만에 끝났다. 이날 추념식에는 서울대를 비롯, 서울시내의 대학생들이 참석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김종칠공화당총재·김영삼신민당총재·김대중씨를 비롯한 각계인사들이 참배했다.
유족과 참배객들은 추념식을 마친뒤 폭풍우속에 우산을 받쳐들고 묘소를 찾아 넋을 위로했다.
이에앞서 상오5시에 4·19동지회 이장렬씨(45)등 회원20여명이 첫참배객으로 탑앞에 분향하고 안내를 맡았다.
또 상오 7시쯤에는 김종칠공화당총재와 이병위의원등 공와당원 30여명이 묘소에 참배했고 7시20분쯤에는 윤보선전대통령부처가 묘소를 찾았다.
김영삼신민당총재는 상오 10시30분쯤 당직자들과 함께 묘소를 참배한뒤 유족들을 위로했으며 김대중씨는 상오10시5분쯤 묘소를 찾았다.

<기념식>
정부는 19일 상오10시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이영빈부총리를 비롯, 김종환내무·김옥길문교·김재명원호처장과 정상간서울시장등 관계인사, 4·19의거상이자회, 4·19의거희생자유족회, 4·19회의원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희생자기제>
4·19혁명희생자 2백2위에 대한 제20주기 제례가 l8일하오6시40분 서울수유동 4·19묘지 유영(유영) 보관소에서 거행됐다.
4·19회, 4·19유족회, 4·19상이자회 3개단체익 이름으로된 공동선언문은「4월혁명 정신이 헌법전문에 명백히 도시돼 3·1운동과 함께 민족정신의 양대기본이념으로 구현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19일상오10시 관악「캠퍼스」에서 고병익총장을 비롯, 교수·학생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4·19 20주년 기념식이 거행됐다.
이날 기념식은 당초 총학생회가 주관키로 했으나 학교측의 제의로 교수·학생들이 함께 주관했다.
이날 서울대총학생회 명의로된 4·19 20주년선언문은 『4·19는 이제 20년을 뛰어넘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앞에 전개되고 있다. 우리의 현대사는 4·19정신을 외면하려는 사람들과 4·19정신을 완결시키려는 사람들의 투쟁의 역사』라고 밝혔다.
당시 교수들이 발표한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이수성하생처장은 선언문낭독에 앞서 ▲구체제하의 잔존세력과 민주학역행세력의 반민주기도에 대해 철퇴를 가해야하고 ▲학생들을 정치권력장악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들에게 경고하며 ▲혼란과 반동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자제와 이성을 촉구하고 ▲상아탑속에 안주하면서 사회물의와 부정에 대해 나는 모르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교수들에게 동참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연세대>
상오10시 대강당앞에서 총학생회주최로 4월혁명기념식을 가졌다.
이어 하오3시부터 같은곳에서 「4월혁명의 재해석」이단 주제로 기념강연회를 열었으며 하오7시에는 노천극장에서 동교 달춤연구회 주최로 마당굿「통일무」를 펼쳐졌다.

<고대>
4·18학생의거 20주년 기념식이 18일상오 6년만에 열린데 이어 하오6시30분부터 2시간동안·동교학생회관 4층에서 4·18의거기념「리셉션」 이 베풀어졌다.
「리셉션」엔 전진오박사(당시총장)·김상협총장·김원기재무강관(고대교우회장)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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