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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로 옥고 치러…5선 의원|「9대」후 외로운 대정부 투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전북 옥구에서 출생한 양 총재는 서울 중동고보 재학중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돼 중국북경으로 망명해 북경 민봉고교를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 참여한 그는 밀명을 띠고 일본으로 파견됐다가 체포돼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3년6개월을 복역했고 해방 후에는 독립노동당선전부장, 성균관이사, 성균관대후원회장을 역임했다.
54년 옥청에서 무소속으로 민의원에 당선, 정계에 진출했으며 유도회총본부부회장, 4·5대민 의원을 거쳐 구 신민당 원내총무, 양원합동회의의장, 정무회의 부의장을 역임했다.
65년 의화학원(대성중)이사장, 한국민주사회주의연구회의장, 신민당정무위원, 8대 국회의원 (성동 갑·신민)을 지내고 73년 신민당을 탈당, 통일당을 창당했다.
9대의원선거에서는 고배를 마셔 원외당수로 6년을 지내다 10대에 다시 국회에 진출, 그동안 제3당총재로서 외로운 대정부 투쟁을 해왔다.
대여투쟁에서는 항시 강경노선을 견지해온 그는「10·26」사태 후 신민당과의 합당 방침을 바꿔 통일당을 중심으로 한 재야신당을 구성, 대통령후보에 김대중씨를 추대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의 갑작스런 별세로 지난 73년 창당이래 그가 이끌어온 통일당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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