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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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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제엔 반론을 제기>
지난 26일 최규하 대통령이 지방 순시중인 제주도에서 서기원 청와대 대변인은 정부를 공격하는 정치인들의 태도가 유감스럽다는 이례적인 성명을 냈다.
그 동안 최 대통령은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대 정부공격에 가급적이면 대응하지 않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 해왔다. 정치적 발언에 일일이 대응을 하다보면 사소한 이견이 돋보이게되고 정치과열만을 가져올 위험이 크다는 생각에서였다.
다음번 선거에 대한 의구심 때문에 야당의 공세가 강화되는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그런다고 해서 그렇다느니 않다느니 대응할 필요 없이 할 일만 묵묵히 하는게 좋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최근 김대중씨가 일본「산께이」신문과의 회견에서 현 정부를 과격한 표현으로 비난하고 김영삼 신민당 총재가 개헌의 방향과 일정을 거듭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무척 불쾌해했다는 것이다.
특히「산께이」회견기사가 났을 때는 김종필 공화당 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인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소연을 했고, 주요 국무위원과 핵심당국자들이 참석하는 회의석상에서도 상당히 강한 분노의 감정을 표시했다고 한다.
거기에다 김영삼 총재의 비난이 가해지자 마침내 서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못을 박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성명으로 정치 논쟁에 가급적 휘말리지 않으려는 그의 기본 생각이 변했다고 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민주도」란 표현을 기대>
○…최 대통령은 누가 뭐라 해도 11·10담화와 대통령취임사, 연두기자회견 등에서 제시한 개헌과 정치발전일정 및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역사적 책임」은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고 누차 강조해왔다.
개헌을 국민투표에 붙여 확정하려는 이상 대통령의 이름으로 발의되어야 하고 그렇다면 그에 대한 역사적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 된다는 것이다. 국회와 협의를 하고 국회안을 존중도 하겠지만 국민투표에 붙일 최종개헌안은 대통령 책임하에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정부의 개헌안은 헌법개정 심의위의 심의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은 복안이 없다고 줄곧 되풀이 되어왔다.
정부주도니 국회주도니 하는 말보다는 굳이 쓴다면「국민주도」라는 말이 좋겠다는 게 정부측 생각이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권력구조에 있어 이른바 「이원적 정부제」와 의원내각제, 그리고 각종의 절충제가 거론되는 등 어떤 방향이 시사되어온 게 사실이다.
최 대통령 자신도 대통령으로의 과도한 권한 집중은 10·26의 경험상 위험하고, 과열된 대통령 선거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만일 정부측에 어떤 생각이 있다면 개헌심의위의 구성상 정부의 생각이 먹혀들 여지는 크다.
68명의 헌법심의위원은 각기의 직능에 관계되는 부문에는 각자의 입장을 강하게 내세울 지 모르나 정부형태·선거방식 같은 헌법의 주요 골격에 대해서는 특정 주장을 고집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자연히 정부측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고위 정부관계자들 간에는 여 야당이 모두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몇 가지 이유로 대통령제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그와 함께 최근에는 군 통수권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이외에는 의원내각제가 좋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와 주목을 끈다.

<청와대 보좌체제 다원화>
○…작년12월6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최 대통령은 분망한 나날을 보냈다.
매주 한번씩 정례적으로 주재하는 중요관계자회의 외도 한 달에 한번씩 주재하는 청와대국무회의, 3개월에 1회씩으로 줄인 무역진흥 확대회의·경제동향보고회의, 그리고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주재하는 수시 회의 등 2, 3일에 한번씩 회의가 있다. 또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보고가 있다. 지난1월22일 경제기획원에서 시작된 연두순시는 27일 제주도를 끝으로 2개월 여만에 끝났다.
당초 보좌진에서는 과거 박대통령 때와는 달리 중앙부처 순시도 중요부처로만 한정해 볼까 했으나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가르냐는 문제점 등이 제기돼 중앙부처를 모두 순시하기로 계획을 바꿨다.
지방관서의 경우에도 지방장관들을 모두 서울로 불러 약식보고를 받는 방안이 거론되다가 지방에서 대통령이 참석할 행사가 있을 때 곁들여 도정보고를 받기로 했는데 결국에는 종전 「스타일」의 도정순시가 되어버렸다.
『일이 취미』라는 얘기를 듣는 최 대통령은 퇴근시간도 늦어 보좌진들이 저녁 늦도록 자리를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퇴근 후에도 사람들을 불러 만나거나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보고를 받는 일이 많고, 휴일에도 사람을 부르든가 불시에 지방나들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중에 아주 중요한 청객이 있다는 얘기고 그것이「역관계」의 핵심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소문….
최 대통령에 대한 청와대 비서실의 정치적인 보좌체제는 전에 비해 다원화됐다.
최광수 비서실장과 고건 정무수석 비서관이 정치문제에 대한 중심적인 보좌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나 이원홍 민원수석 비서관이 야당관계를 맡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 대변인 등 몇몇 수석비서관들이 유격에 동원된다. 가끔은 전직 고관의「지혜」까지 응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자기영역이 분명했던 10·26이전에 비해 총동원 정치보좌체제라고나 할는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는 최 대통령의 소신 때문인지 현 정부의 운용도 10·26전의 청와대 중앙청 관계와는 다른 면이 많다.
국무총리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화된 것이다. 전에는 정치·경제문제를 비롯해 중요한 문제는 청와대와 관계부처 사이에서 요리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현확 국무총리가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각료급 간담회를 주재해 국무회의에 회부할 중요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총리 결재는 실질적 결심>
대개 신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도 안건처리보다는 국정전반에 걸친 의견교환에 역점을 두어 운영하고있다.
뿐만 아니라 총리의 결재가 필요한 모든 사항은 형식적인「통과」가 아닌 실질적인「결심」을 받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책결정과정 때문에 연초 환율·금리·유류가 인상과정에서는 청와대와 중앙청 보좌관들간에 오해와 잡음이 일기까지 했다.
인사문제 때문에 결재서류가 중앙청, 청와대 사이를 좀 오락가락 했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국회의원 출신이기 때문에 국회와 정당 등 정치한계에 있어서도 신 총리의 역할은 커진 것 같다.
일본의「산께이」신문회견과 아·미주공관장회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신 총리는 집들이를 겸해 국회의장단 및 상임위원장·공화당간부·유정회 간부 등과도 어울리고 있다. 여건만 허락되면 야당인사도 초청할 계획이라는 얘기다.<성병욱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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