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근로자의 가계 수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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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한해동안 도시근로자 가계수지는 높은 물가고에도 불구하고 지출증가가 상대적으로 소득증가 보다 낮게 나타났다.
이 기획원 통계의 신뢰성을 인정한다면 지난해는 도시가계의 긴축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평가된다. 왜냐하면 지난해는 유가인상과 연초부터의 공산품가격 인상으로 도매 24%, 소비자물가는 21.2%나 올라 가계압박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지출압박 속에서도 도시가계가 경상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소득증가보다 오히려 지출억제에 더 힘입은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우리는 이런 흑자가계가 도시가구 전체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할는지에는 솔직히 말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조사가 전 도시가구의 0.1%에 불과한 4천여 가구를 임의 추출한 표본조사인 점을 고려에 넣을 때 그런 느낌은 더욱 두드러진다. 높은「인플레」아래서 가계 흑자율이 오히려 그 전해에 비해 높아졌다면 표본의 대표도가 떨어지거나 편차가 크다는 개연성을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기획원의 다른 지정 통계처럼 높은 공신력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가계수지 통계는 현실감각에 맞게 개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적어도 표본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표본수를 지금보다 훨씬 넓히고 대표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인 것 같다.
이런 통계 편제상의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79년 도시 가계 수지 통계는 몇 가지 시사를 던져 준다. 우선 가계전체의 소비성향이 미세하나마 전년에 비해 떨어진 점이 눈에 띈다. 78년에 80.7%였던 것이 79.7%로 소비성향이 낮아졌다는 사실은 긴축과 불황의 진전이 가계운영의 건실화에 기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추세는 올해 들어서도 최소한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유례없는 물가파동이 올 들어 다시 재연되고 고유가로 인해 국민소득의 3% 이상이 해외로 유출되는 현실은 불가피하게 최종 수요 특히 가계 소비를 압박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 소매액 지수나 백화점 판매고 지수가 다같이 감소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을 반증한다.
이는 곧 불황과「인플레」에 적응하려는 가계의 안간힘을 나타낸다. 따라서 정부는 당연히 물가안정, 특히 생계비 안정을 올해 최대의 정책과제로 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3월 상순까지 이미 도매물가가 21%나 올랐지만 다행히 중순이후 상승율이 둔화추세에 있고 수출입 민간 건축을 중심으로 경기의 반전기미가 엿보이므로 최악의 경기바닥은 벗어날 조짐 또한 없지 않다.
때문에 참을성 없이 무리하게 경기회복에 집착하지 말고「인플레」의 속행이나 재연을 막기 위한 신중한 안정대책을 계속할 시점으로 판단된다.
특히 지난해 가계지출의 증가폭이 높았던 주거비나 의료비·교육비를 포함한 잡비항목의 안정을 위해 특별한 대책과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79년중 49.7%나 늘어난 주거비는 주로 집값 앙등과 방세가 폭등(60.6%)에 기인하므로, 임대 입주자 보호를 위한 법령을 하루빨리 제정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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