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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회담의 생산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남북 총리회담의 절차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은 18일의 회동으로 벌써 4차례나 거듭했다.
이동안 양측은 총리회담을 어디서 열 것이냐 하는 장소문제와 의제를 미리 정해 놓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관해 상호간의 의견과 주장을 절충했다.
장소문제와 관련해 북한측은 애초에『서울·평양의 왕복, 판문점 또는 제3국도 좋다』는 제의를 해와 그 중의 어느 것이라도 우리가 임의로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나왔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가지로 생각한 끝에 그중「제3국」을 선택하자 북한측은 웬일인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울·평양왕복」을 고집하기 시작했다.
「제3국」은 우리측의 최초의 제안이 아니라 바로 북한측 자체 제안의 하나였는데도 우리가 그것을 선택·동의하자 마치 그것이 자기측 제안이 아니었다는 듯이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회담관례상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태도요 자기모순으로, 장소문제는 우리측의「제3국안」선택으로 일단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 났어야 옳은 일이다.
그러나 북한이 계속「서울·평양 왕복」을 고집함에 따라 우리측으로서는 상대방의 행위가 사리에 어긋나는 것임을 잘 알면서도 회담의 성사를 위해 북한측의 그런 주장에 끝까지 인내로써 대해 왔던 것이다.
결과 장소 문제에 관해서는 이도 저도 아닌 제3안 즉「판문점안」이 하나의 타협안으로 절충되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우리측이「서울·평양 왕복」을 적절하지 않다고 본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다.
과거의 회담경험에 비추어 총리회담이 회담장 밖에서의 정치선전으로 악용되거나 오도되지 않고 보다 생산적이고 실무적인 것이 되기 위해선「서울·평양 왕복」보다는「제3국」같은 조용한 분위기가 더 바람직하다고 본 때문이다.
과거에 보면 북한측은 회담장 안의 상대방 대표를 향해 말하고 듣는 것이 아니라 회담장 밖에서의 어떤 다른 이득을 노려 연설을 하고「제스처」도 부리려 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회담은 단 한 발짝도 진척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진정으로 회담다운 회담을 해야만할 터인데 그러기 위해선 북한측이 전술성을 탈피하여 회담 본연의 적합한 룰과 실무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어야 할 일이다.
추측컨대 북한은 남북 총리회담을 엄격한 의미의「회담」으로서 보다는「상봉」또는「접촉」등 모호한 만남 정도로 얼버무리고 격하시켜서, 그「느슨한 만남」을 즉각 다변적 정치협상회의 제의 같은 정치선전 활동의 한 계기로 악용할 생각을 하고있는 것 같다.
북한측이 총리회담의 성격과 의미를 굳이「상봉」이란 말로 불투명하게 희역시키려 하면서 의제의 사전 설정마저도 애써 회피하려 하는 이유가 아마 그 점에 있는 것 같다.
남북 총리회담이 성사된다 하더라도 북한측이 만약 이런 태도를 계속 바꾸려하지 않는다면 대화나 회담은 하나마나다.
남북 총리회담이 진정으로 그런 소모적인 양태에 빠지지 않고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행사가 되기 위해, 북한측은 하루속히 정치성에서 탈피하여 분단에서 오는 고통 어느 한 가지라도 하나 하나 실질적으로 해결해 나가려는 성의와 진지성, 그리고 실무적인 자세를 갖춰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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