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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부드러워진 국무회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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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말 신현확 총리 「팀」이 들어선 이후 국무회의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날 너무 공식적이어서 막막했던 회의가 요즘에는 봄바람처럼 훈훈해져 더러 폭소가 터지고 때로는 고성으로 격론을 벌이는 「살아있는」국정 토론장이 됐다.
조각후 첫 회의 때 홍일점 김옥길 문교장관이 『내일부터 일어서지 않을래요』라고 해서 「일등기립 경례」가 없어졌고 김 장관 말대로 『여기서 우리가 웃어야 국민들도 웃을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라고 한 국무위원이 설명.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운영>
회의내용도 행정차원의 요식 행위에서 서서히 정치 「레벨」로 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를 보는 신현확 총리의 「스타일」과도 관련이 되는데 각의를 주재하는 신 총리는 『각 부처의 장관으로 국무회의에 임하지 말고 명실공히 국무위원의 직분을 다해달라』그 요망하고 있다.
국무위원들은 국정을 소상히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소관부처업무만 얘기하지 말고 타 부처의 궁금한 일도 캐묻고 의견을 제시해야한다는 것이 신 총리의 생각이다.
「1·12」경계 조치 때는 8명의 국무위원들이 『환율과 금리인상은 시기가 맞지 않는다』 『인상율이 너무 높다』는 등 이견을 제시해·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신 총이라 나서 『이 조치를 늦더추면 파탄이 온다』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을 형편』이라고 설득해 결론을 내렸다.
유가인상 때는 김옥길 문교가 『지난해 7월 석유 값을 대폭 올리면서 앞으로의 추가 인상분까지 합쳐 올린다고 해놓고 이번에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고 반성을 촉구.
이규현 문공은 『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지만 인상배경을 잘 골라 홍보정책에 속수무책』이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종전 같으면 법안이나 동의안·상동안 등을 심의하거나 「각하」의 훈계를 듣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지만 요즘에는 의제 외의 신변 얘기도 나눈다.
신당설이 파다하게 나돌던 무렵 신 총리는 『내가 국정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다른 일에 신경 쓸 여가가 있겠는가』고 풍설을 일축하고 『여러분들이나마 그런 헛소문에 현혹되지 말라』고 지원을 요청(2월5일).
이재설 농수산은 농수산부산하 각 기관에서 익명의 투서와 모략이 판을 쳐 골치를 썩인다고 호소했고 신 총리가 이를 받아 『각 부처와 산하기관에서는 근거 없는 것을 가지고 공무원을 심하게 조사해 사기를 떨어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2월8일). 분위기가 바뀌자 이 농수산 같은 이는 농촌 실태를 돌아본 후 『농정에 대한 농민들의 불평이 높아지고 있다』고 솔직한 보고를 했다는 것이 한 참석자의 얘기다.
진의종 보사는 지난해말 「이웃돕기 모금실적」을 보고하면서 『20억원을 목표로 했으나 1천4백만원밖에 모으지 못했다』고 하소연해서 협조를 얻었다.
규정상 회의는 국무위원 과반수 출석으로 성립되고 출석수 3분의2이상 찬성으로 의결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운영한다. 한사람이라도 반대가 있으면 보류·수정·재 상정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규호 통일원장관은 『첫 번째 회의 때는 내가 여기서 무얼 할 수 있나 하고 낙담했지만 두 번째부터는 내가 필요한 회의라고 느꼈다」고 했다.
분위기를 더욱 살리기 위해 현재 2개 열로 나뉘어 마주보게 되어있는 좌석배치를 원형으로 바꾸고 「마이크」도 없애라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의장을 보려면 모두 고개를 돌려야하는 불편이 있고 또 「마이크」를 쓰니까 안정감이 없다는 지적이다.

<좌석배치 원형화도 검토>
청와대 회의에서는 의장인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나 보통 때는 부의장인 국무총리가 사회를 본다.
국무회의 평균 시간은 올 들어 1시간10분으로 지난해의 평균40분에 비해 30분이나 길어졌다.
개회 2일 전까지 의사일정과 함께 국무위원들에게 배부되는 정식안건이 있는가 하면 즉석에서 배부되는 「즉석안건」도 있다. 미리 내주면 누설될 염려가 있는 안건들이 즉석안건으로 배부되나 가끔 시간 여유가 없어 「지각」제출되는 경우도 있다. 백석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대장승진안과 신현천 경상대총장 임명안(2월26일)등이 최근에 있었던 즉석안건.
발표를 위해 문공부 공보국장이 배석하지만 총리 지시사항 등 공식적이고 기본적인 안건 외에는 입을 다문다. 『국무회의에서 미주알고주알 예기하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새어나가서는 안 된다.』는 신 총리의 지시 때문이다.
국무회의가 심의기구이고 최종적 결정권이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심의내용이 흘러 나가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나 모처럼 분위기를 일신해가고 있는 국무회의가 백성의 의견을 대변하자면 공개하는 부분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중앙 주변의 의견이다.
경제관계 회의 「스타일」도 예전보다 많이 「민주화」되어 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우선 달마다 경제기관원에서 열리던 월례경제동향보고(통칭 월경)를 없애고 대신 4분기 별로 한 번씩 여는 분기 동향 보고로 개편한 것.
경제의 흐름이 연속적인데 비해 달마다 번거롭게 동향을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많아 올해부터 이를 개편했는데 「차트」·「브리핑」행정의 낭비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경제 각료들의 회의는 여전히 많아 「경제장관회의」 「경제장관간담회」 「경제장관협의회」 「경제장관특별대책회의」동이 매주 잇달아 열리는데 진행 「스타일」은 많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주요 정책 결정에서 청와대의 정전인가(?) 늘 전제로 부수되는 문제들을 협의하는 하향식이었으나 지금은 장관들이 제각기 소신을 밝히고 있어 「정책결정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
이 때문에 다소 정책결정과정의 진통이 갖게 되었지만 그만큼 결정이 신중해지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는게 관리들의 평가다.

<브리핑 행정의 낭비 없애>
국무회의가 공식기구라면 「각료급 간담회」는 비공식 협의기구. 과거에는 총리공관에서 동정협의회가 있었으나 과도정부의 성격상 공화당과 짝자꿍 한다는 인상을 없애느라 관계장관 끼리만 모인다. 중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신 총리가 소집해 중앙청안 후생관에서 아침식사를 같이하며 사전 조정을 한다. 지난 12일 7차 회의를 가졌으니까 한 달에 두세번 열리는 셈.
지난1월23일 부총리. 내무·법무·국방·문공·총무처장관과 중정 부장대리·총리비서실장·행조실장 등이 참석한 첫 회의를 소집해 남북대화문제와 복권 관계 등을 협의했고, 제3차 회의(2월13일)에선 학도 호국단 개편안을 밀도 있게 논의했다는 것이 관계자의 얘기.
일부에선 이러한 방식이 종전의 「관계장관회의」처럼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군림할 우려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나 중요문제일수록 사전협의가 많아야한다는 것이 신 총리의 생각인 것 같다. <김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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