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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내각책임제론의 대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발췌개헌안파동을 말하기에 앞서 당시의 국내 경치 정세를 좀더 설명해야할 것 같다.
50년「6·25」사변이 발발했을때 그 해 5월30일에 선거를 치른 제2대 국회는 첫 소집지인 불과 닷새밖에 되지 않았다.
6월20일에 개원되어 국회의장에 신익희의원(광주)을 뽑아놓고만 있었다. 교섭단체나 분과위 구성도 안돼 있었다.
그때 나는 용산구동자동에 허름한 집을 갖고 있었다. 전쟁이 터진 날은 마침 일요일이라 나와 고문합격동기인 전남경찰청장 박승관군과 경무부국장인가하는 것을 맡고있던 조병설군이 나의 국회의원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와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곧 전쟁 사실이 알려지고 비상이 걸려 그들은 황황히 돌아갔다. 북괴는 이날 오후부터「탱크」를 앞세우고 노도와 같이 모든 전선을 휩쓸고 내려왔다.
밤에 야간국회가 열렸다. 당시 국방장관이던 신성모는 큰소리만 쳤다. 국회에서 결의만해준다면 압록강까지 올라갈 수있다고 장담했다.
적이 쳐들어오는데도 38선이 있어서 그 너머로 들어갈 수 없다는 궤변을 내세웠다. 채병덕 참모종장도 마찬가지 였다.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허장성세의 발언을 늘어놨다.
그런 정부쪽 정세보고에도 불구하고 소문으로는 적군이 물밀듯이 쳐내려온다는 것이었다.
국회의원들은 이 야간국회에서 반격을 철저히 하라는 결의를 채택하고 우리가 어떤 경우에라도 수도를 사수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이미 이승만박사는 서울을 떠나 피난하고 없었다. 이박사가 없는데「라디오」에서는 서울을 사수할것이니 국민들은 절대 안심하라는 군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국회가 사수결의를 했지만 무기도 없는 국회의원이 뭘로 어떻게 사수해야하는지 나는 알수가 없었다.
조소양의원(성북)에게 어떻게 처신하는게 옳으냐고 물었더니 그 양반은 『물론 국회가 사수결의를 했지만 국민의 사기를 돋우려고 한것이니 결국은 의원 각자의 결정에 따를 사태가 올것』이라고 대답했다.
다른 선배의원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실망적이었다. 야간국회를 끝내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의원중 일부는 자동차가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가 못해 조봉암부의장(인천병)의 차를 편승해 귀가했다.
신익희의장의 의견을 들어보려고 삼청동의 국회의장 공관에 전화를 걸었다. 『탕,탕-』포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의사당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자고 굳게 약속한 신의장도 이미 서울에 없었다. 나 같은 사람보다는 경보를 더 빨리 들었던것 같다.
당시 신의장과 나는 가까운 사이였다. 정치적으로는 제헌국회때 내가 전문위원으로 모시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그가 세운 국민대의 경영자금과 학교 교실확보에 주도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6월27일 다리가 끊긴다고해서 나는 그처럼 황급한 상황에서는 도저히 가족을 데리고 갈수가 없다고 판단되어 가족들과 이별한뒤 혼자 걸어서 한강다리를 건넜다.
그 후 대전에서 임시본회의가 얼리고 대구에서도 전전하며 회의를 열던 국회는 부산에 정착하여 그 판국에서도 줄곧 회의를 소집했다.
임시수도에서 집무가 계속된 이승만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쟁에 전혀 대비를 못하면서 호언장담만 계속했고 행정능력이 모자라 모든 부문에서 제대로 된 조치가 전혀 이루어지지를 않았다.
특히 국민들이 피난할 수 있도록 적군의 움직임과 전황을 충분히 알려서 동요없는 대비책을 강구할 수 있게하는 것이 옳은데 정부는 비인도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국민의 때죽음을 초래한 것은 국민의 가슴에 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때까지만해도 이 박사는 국민적으로 숭앙을 받는 인물이었다. 정부가 수립된지 얼마되지않은 때였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친 국부처럼 모셔왔던 터였다.
그러나 이같은 실정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제 이박사는 나라의 어른으로만 행세하그 실제 행정은 국민과 호흡이 맞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서 이루어지게 국무총리가 맡게 해야한다는 의견이 비등하게 됐다.
그전에 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이 급선무일뿐 아니라 정당 훈련이 안되어있기 때문에 내각책임제를 실시하면 더 혼란이 일어나고 불안해진다고 생각하던 사람들까지도 정부수립 2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국민의사를 배반하는 일이 많이 생기게되자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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