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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평생 그려온 어머니, 꼭 찾고 싶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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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수없이 제 자신에게 물었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이번 여행에서 절반 정도는 얻은 것 같아요. 적어도 고국의 땅을 밟아봤으니까요.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대답은 역시 어머니를 만나야만 찾을 수 있겠죠…."

지난 1일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필라델피아 지역 흑인 지도자 친선사절단' 20명 중에는 에스텔 쿡 샘슨(52.여) 하워드대 의대 교수도 있었다.

샘슨 교수는 미국 유니온대에 1974년 여성 신입생 1기로 입학해 생물학을 전공하고 이후 명문 조지타운대 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방사선의학 분야의 전문가. 94년 유니온대가 학교를 빛낸 동문들에게 수상하는 '이 노트(E. Nott)상을 받았을 정도로 성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이런 높은 학식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쾌하게 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바로 "몇 살이냐"는 물음. 세 살배기들도 손가락을 펴 대답하는 이 질문을 받을 때면 샘슨 교수는 "52세"이라고 답하고 나서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야 했다.

샘슨 교수가 자신의 나이를 모르는 것은 그가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뒤 미국으로 입양된 전쟁고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아원을 전전하다 58년 주한 미군에게 입양됐다. 당시 작성된 빛바랜 서류에는 샘슨 교수의 이름이 '강현숙', 주소는 '서울 명동2가 1번지', 생년월일은 '51년 9월 7일'이라고 적혀 있다.

입양된 후에도 샘슨 교수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양부(養父)의 집에는 이미 친아들이 넷이나 있었다.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던 것.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책임을 질 줄은 몰랐다. 게다가 계모는 '몹시도 차가운 사람'이었다.

샘슨 교수는 어려서부터 패스트 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힘겹게 학교를 다녀야 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지역 보건소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학비를 대출받아 학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런 힘겨운 생활보다 그를 더 괴롭혔던 것은 정체성의 혼란이었다.

"도저히 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죠. 또래의 흑인들은 나를 동양인 취급했고 반대로 동양인들은 저를 흑인으로 대했어요. 특히 한국인들은 혼혈인 저를 싫어하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어요. 아마 지난 세월 동안 늘 한국을 그리워하면서도 한번도 찾지 않았던 건 한국인에 대해 이런 서운한 감정 남아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말 친선사절단원으로 한국을 찾기로 마음 먹었던 것은 부쩍 흰 머리가 늘어가면서 '뿌리'에 대한 그리움이 서운함보다 커졌기 때문이었다. 실제 한국 방문을 신청하면서 입양서류를 꼼꼼히 챙긴 그는 이라크 전쟁.한국에서의 반미 감정 확산 등으로 당초 신청자 중 절반 가까이가 한국 방문을 포기한 가운데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40년만에 와보니 정말 내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게 자랑스럽더군요.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모습에 비해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정말 오길 잘 했단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전부 만족스럽진 못했다. 굳게 마음 먹고 시작한 뿌리 찾기가 몇 걸음 떼어 보지도 못하고 벽에 부딪친 것. 다른 단원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아침 일찍 서울 명동을 헤매인 끝에 자신이 있던 고아원이 명동성당 보육원이었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곳에 머물렀던 당시 보모로 있던 수녀가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수녀를 만나지 못해 어느 고아원에서 명동성당으로 옮겨졌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당시 고아원에서 대충 써넣은 것일 수 있다는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자신의 과거를 뒤로 한 채 지난 10일 샘슨 교수는 일행과 함께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만나진 못했지만 나를 버릴 당시 어머니에게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조금도 원망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만난다면 그동안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했는지를 말해주고 싶다"며 "오는 9월쯤 다시 한국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혈육에 대한 그리움으로 '검은 피부의 한국인' 샘슨 교수의 뿌리 찾기는 계속될 것 같았다.

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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