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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시안 싸고 미묘해진 공화, 유정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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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26이후 「범 여권」이란 막연한 색채 아래 진로를 암중모색해오던 공화-유정회가 개헌방향과 주도문제를 싸고 미묘한 관계변화를 보이고 있다.
유정 9명이 의견 제시
공화·유정·정부간의 조용한 삼각관계에 첫 파문을 던진 것은 지난 9일 삼청동총리공관에서 있었던 최규하 대통령·신현확 국무총리·김종필 공화당총재·최영희 유정회 의장간의 4자 회담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개헌복안을 탐색해오던 공화당과 유정회는 최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실마리를 얻어내기 위해 회담을 요청해 김종필 총재가 그 동안 국회 개헌특위의 여당의원들이 마련한 여권시안을 설명하고 정부-여당 안 간의 마찰을 피하 자며 최대통령이 사전에 조정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줄 것을 요망했다.
이에 대해 최대통령은 대통령 유고 시를 대비해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해야겠고 통일주체 국민회의의 존속, 활용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외교적 수사로 응대했을 뿐 정작 핵심문제라 할 통치구조의 골격 등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최대통령을 별도로 만난 최 의장은 청구 동으로 가 김택수·장영순·최영철·이태섭 (이상 공화) 이석제·이경호 (이상 유정)의원 등이 배석한 가운데 김종필 총재에게 유정회의 난처한 입장을 설명했다.
11일 국회에 낼 여당 안을 「공화당 안」으로 해줄 것과 이미 11일 열기로 통보돼있는 공화-유정 합동의총을 분리해 열 것을 타진했다.
그러나 김 총재는 시안작성 과정에 유정회도 참여했고 갑자기 의총을 분리해 공화당과 유정회가 반목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는 반론을 제기했고 배석자들이 김 총재의 의견에 동조함으로써 최 의장의 요구는 없었던 것으로 처리됐다.
10일은 공화당과 유정회가 각기 헌법 특위와 당무회의·운영회의를 열어 여권시안을 확인하기로 돼있던 날.
그런데 이날 낮부터 유정회 의원간에 갑자기 사발통문이 돌기 시작했다. 『유정회는 개헌안을 안내기로10·26직후 열린 의총에서 결의했었다』『사전에 소속의원들에게 일언반구의 상의도 없이 공화당에 업혀 개헌안을 내겠다니 무슨 소리냐』『개헌안을 내려면 유정회도 독자 안을 만들자』는 등등의 요지였다.
하오 4시 유정회 헌법특위가 열렸다. 최대현·갈봉근·이양우 의원 등이 국회 개헌특위 「멤버」이기도 한 이석제·김세배·이경호 의원을 향해 공세를 폈다. 『운영회의를 불과 2시간 남겨놓고 무슨 안을 심의하라는 거냐』는 것. 결론은 이 안이 공화당 안이고 확정된 것이 아닌 시안이며 유정회도 독자의견을 반영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석제·김세배·이경호 의원이 회 내 헌법특위 설득에 실패하고 운영회의장인 D음식점에 나타나자 이미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 일부 소속의원들에게 행사됐다는 소문이 번졌다.
운영회의가 열리자 신범식·송방용 위원이 기선을 제압했다. 『유정회 의원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통대에서 선출됐다. 그런 입장에서는 정부안을 존중해야하는데 정부가 안을 내놓기도 전에 공화당에 들러리설 것이 무엇이냐』『우리의 특수한 안보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김택수 흥행단이 내놓은 인기곡목에 장단을 맞추는 것은 순리가 아니다』는 등등….
그러나 많은 위원들이 의견을 표시하지 앉았고 최영희 의장·이영근 총무, 이석제·김세배·이경호·고재필·오준석 위원 등이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맞서 대세는 공화 합류 파의 승리로 끝났다.
다만 자신들을 뽑아준 통대 측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으므로 합동의총에서 통대의 존속필요성을 여당 안에 반영시킬 것을 촉구하기로 하고 김종필 총재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격돌이 예상됐던 11일 합동의총은 김택수 국회개헌 특위위원장이 이번 여권 안이 시안임을 먼저 강조하고 앞으로 좋은 의견이 있으면 보완하겠다 고해 이성근 이양우 의원이 통대존속 필요성을 역설한 가운데 조용히 끝났다. 신범식 송방용 갈봉근 선우련 심융택 의원 등 12명은 특별한 이유 없이 불참했다.
김종필 총재가 『공화-유정의원이 만장일치로 여권시안에 찬성해 줘 고맙다』고 말함으로써 합동 안이 되었으나 유정회 내의 불만은 꺼지지 않고 화살이 회직자에게 돌아갔다.
친정부파와 친공화당파
이렇게 되자 최영희 의장은 유정회 쪽의 이석제 헌법특위 위원장과 공동명의로 소속의원들에게 『개혁의 추가의견을 내달라』는 공한을 보내고 의원들과「그룹」별 오찬을 하며 회 내 불만무마작업을 펴고있다. 그런데 18일 마감 때까지 9명만 의견을 내놓았다.
김종필 총재도 유정회의 이 같은 분위기를 참작해 『통대 의원들의 공로를 인정하며 그들의 유능한 능력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해 측면지원을 했다. 그럼에도 유정회 주변에는 L의원 등 일부 소장 의원들이 움직이고 앞으로 국회개헌특위 심의과정에서 유정회가 이의를 제기해 전원합의제로 돼있는 특위운영이 지연될 것이라는 등 진원이 잡히지 않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같은 이상기류에 대해 김종하 대변인은 『일부 유정회 의원들이 연줄로 정부측으로부터 입장을 설명 듣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와 공화당간에 헌법골격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정회 측 국회개헌특위위원인 이도환 의원은 『공화당 시안이란 김택수 위원장을 비롯한 한 두 사람에 의해 서둘러 만들어진 것이며 정부와는 물론 유정회 측과도 진지한 논의가 없었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김세배 의원은 『여당 안이 광범위한 사전조정 절차를 못 거친 흠이 있기는 하나 시대정신을 충분히 살린 안』이라며 긍정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유정회 의원들이 친정부파와 친공화당파의 두 갈래 성향으로 나뉘고 있는 것이 흥미로운 현상이다.
친정부 쪽은 공화당이 정부에 대해 갑자기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자세를 못마땅해하고 있으며 통대 출신인 유정회가 최대통령에게 힘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다수인 친 공화당 측은 계속 정치에 뜻이 있거나 여론의 대세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20여명 이상이 공화당과의 유대를 지속해야 할 입장이고 김종필 총재 역시 유정회 의원들의 개별적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김영광 의원 같은 이는 공화당이 고립무원을 외치며 행정부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득속보다는 감속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가 얻어맞으면 공화당도 같이 아플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공화당은 유정회의 반발에 착잡한 반응이다. 범 여권단합을 위해서는 유정회의 완전포용이 바람직하나 지역구 사정 등으로 그럴 형편이 못된다.
C중진은 『민정회에서 영입한 무소속 당선 국회의원들 때문에도 골치를 썩히고 있는데 유정회 의원까지 소화하자면 당내불화가 가중될 것』이라며 또 다른 고충을 설명했다.
그는 공화당이 유정회의 주문을 받아 통대의원의 지위를 거론하는 것도 통대 조직을 흡수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국민들에게는 감속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 명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공화당은 진퇴유곡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종필 총재는 당초 지난달 말 지방순시 때 개헌골격에 관한 공화당 안을 터뜨리려고 준비까지 했다가 정부-유정회 간의 묘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자제했으며 대신 범 여권단합을 제 1의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국민합의 역류는 어려워
한편 신민당에서는 개헌안을 두고 여당권 안에서 상당한 내부혼란을 겪는데 대해 한편으로 불 구경하듯 하면서 한편으로는 국회의 개헌 단일 안 마련에 암초가 될까봐 걱정이다.
채문식 의원은 『헌법개정을 한다는 국민적 합의는 유정회와 통일주체 국민회의를 없애자는 것인데 통대의 존속운운 얘기가 나오는 것은 어부성세』이라며 『이미 여당 안이 공식으로 제출됐으니 그 안에 파라 심의하면 될 것』이라며 유정회 움직임을 일부러 묵살하는 듯 한 반응을 보였다. 최형우 의원은 『유정회가 국회개헌활동에 찬물을 끼얹어 민주발전을 더디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김수막·송원영 의원은『여러 가지 어려운 만국에 국회에서의 단일 안 작성에 암운을 던지는 처사』라며 이미 국민적 합의를 이룬 권력구조의 핵심조항은 어떤 일이 있어도 변경될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나 많은 야당의원들은 이미 개헌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커다란 물줄기를 이룬 이상 역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낙관론을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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