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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호혜택」 안주는 건 부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저는 31년 전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직동 백운산 공비 토벌작전 때 전사한 대한청년단 직동리 단장 안승기씨(일명 안용선)의 아들입니다. 저에게도 원호가족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몇 자 적습니다.
49년 11월 29일 밤의 일입니다. 당시 저의 아버님은 군·경 및 단원들과 함께 백운산 공비 토벌작전에 나섰다가 공비들의 기습을 받고 전사했습니다.
거기다 공비들은 저희 집을 불질러 가산과 함께 어린 동생이 불에 타 숨지고 어머님마저 중화상으로 얼마 후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16세이던 누나와 9세이던 저, 그리고 6세이던 어린 동생 등 3남매는 졸지에 고아가 됐습니다.
해가 바뀌고 한국전쟁이 터지자 우리 3남매는 피난길에 나섰으나 굶주림 속에서 어린 동생이 숨을 거두고 얼마 후 누나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 구걸을 하여 떠돌이 생활을 하던 중 전쟁고아 임시수용소에서 11세 되던 해 서울로 올라와 정릉에 있는 원불교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철이 들자 행장도 하고 공장에서 심부름도 하면서 연명해 오던 중 67년 저와 같은 불우한 여인과 결혼해 남매를 두었습니다.
친구로부터 「미싱」 1대를 빌어 삯바느질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아왔으나 친구가 사업실패로 빌려준 「미싱」을 찾아가 버려 살길이 막연해졌습니다. 견디다 못한 저의 처는 남매를 남겨둔 채 행방을 감추었습니다.
그 후부터 어린 남매를 데리고 이곳저곳 사글세방을 헤매고 있으나 지병인 신장염으로 건강마저 악화돼 눈앞이 캄캄합니다.
지난해 6월 22일 주위사람들의 권유로 원호가족 혜택을 받기 위해 관계서류를 구비하여 영월경찰서에 아버님의 전공확인증 발급신청서를 냈었습니다.
그러나 현행법상 그 같은 확인증을 발급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호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영월군 상동읍 녹전리에는 당시 공비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분들의 뜻을 기리는 충혼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또 당시 아버님의 전공과 전사사실 등을 잘 아는 어른들이 지금도 여러분 생존해 계십니다.
저에게도 원호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길이 터지기를 바랍니다.
안광희<서울 신당1동 229의 31 유근형씨 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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