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심의 정풍" 온 사회에 퍼지기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했다. 인류역사는 죄악이 관영하면 망하고 천도에 돌아오면 흥함을 증명하여 준다. 일제 30여 년은 고사하고 6·25 동족상잔의 비극, 4·19학생의거 또는 작년의 10·26의 비극 등 시련과 고초를 당한 우리다.
당면한 안보·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의 초비상의 위기를 맞아 질서 있는 민주발전과 경제위기극복을 위하여 개헌작업, 경제긴급조치 등 국민의 지혜를 총 결집하는 노력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고 이 때문에 위기극복과 민주발전을 위해서는 민족의 총화와 단결이 요청된다는 말 등을 하고 있다.

<책임전가는 단결 저해>
옳은 말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뭉치면 살고 헤치면 죽는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그러나 국가위기를 맞아 온 국민은 각자 그 나름대로 불행의 씨를 뿌리지 않았는가 자성회개 해야 할 것 같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학자나 예술가나 각계 각층의 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불행한 사태에 대하여 책임을 느껴야겠다. 다시 불행한 씨를 뿌리지 않도록 새로운 정신무장을 할 지혜를 갖추어야 하겠다. 이러한 정신적 바탕 위에 비로소 민족의 총화·단결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러한 바탕 없는 총화·단결이란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과실을 따먹고 「아담」은 「이브」에게, 「이브」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스스로는 잘못이 없다는 생각이나, 불법을 책망한 세례「요한」의 충언에 반성은커녕 「요한」의 목을 벤 「헤롯」의 방자한 태도를 가져서는 총화·단결을 가져올 수 없고 불행의 씨는 다시 뿌려지게 마련이다.
요새 종종 정당 내에 정풍운동이 운위되고 있다. 이 정풍운동은 내가 남의 잘못을 지적하는 정풍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불찰과 잘못을 뉘우치는 양심의 정풍운동이어야 하며 사회에 퍼지기를 원한다. 「다윗」왕이 자기의 죄악을 지적하는 「나단」의 간언에 회개의 눈물로 침상을 적시는 겸허한 태도가 불법한 행위를 한 실권자들에게 더욱 요청된다. 이러한 정신운동이 그 실효를 거두는 것이 이 민족이 참살길이다.

<집권자는 겸허해야>
민주정치 발전을 위한 개헌작업을 비롯한 합리적 사회개혁을 위한 여러 가지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국가권력기구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기본권보장을 위한 헌법적 안전장치를 어떻게 해야하며 국회의 기능강화를 위하여 또는 사법권 독립을 위하여 어떠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옳은가, 공청회로 지상발표로 형형색색의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이유가 있는 줄로 알지만 문제는 집권자의 겸허한 태도와 준법정신이 갖춰질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요긴하다. 집권자의 엉뚱한 권력남용이나 위법한 행위를 어떻게 제어하는 장치를 마련하느냐다.
국회에 대통령의 비위에 대한 탄핵권을 인정한다던가, 국회나 법원의 기능을 통하여 권력남용을 「체크」하는 등 권력분립의 이념을 살리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입법정치의 요체겠지만 이러한 제도적 장치만으로써는 집권자가 실력으로 이를 유린할 때는 실효를 거둘 수 없는 것이다.
집권자의 이러한 폭거를 막기 위하여서는 국민여론으로 뒷받침되는 국민의 저항, 다시 말해 양심의 소리가 그대로 나타나 반영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국민의 성원을 이룩하기 위하여는 언론의 자유가 절대적인 뒷받침이 돼야 한다. 언론은 국민의 양심의 소리요, 권력자나 어느 지도자는 물론 온 국민의 양심을 일깨우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없거나 언론이 사회적 양심을 대변하지 않고 불법자를 옹호하는 사회에 민주주의 꽃은 필 수 없다. 입헌민주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특히 강조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법관은 양심 따라 재판>
그리고 민주발전을 위한 큰 기둥의 하나로 사법권의 독립이 강력히 주장되고 있는 세론은 올바르다. 법원은 법을 통한 양심의 소리를 판결을 통하여 표시하는 기관인 만큼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하여 큰 지주가 되는 것이다. 법관은 오직 양심과 법률에 의하여 재판해야 되며 법관의 법적 양심은 외부세력에 의하여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사법부의 독립에 관한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법의 독립은 마치 운동경기에 있어 심판의 권위가 절대 존중되어야 함과 같이 중요하다.
법관에 의한 재판은 법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요, 법을 통한 사회적 양심의 발현이요, 기본권 수호의 최후의 보루로서 사법의 독립은 언론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쌍벽을 이룬다.
운동경기에 있어 심판이 강폭한 선수에 의하여 폭행구타를 당한다면 그 경기가 원만히 진행될 수 없음과 같이 사법이 집권자에 의하여 유린당해서야 정의로운 정치(경기)가 기대될 수 없다.
사법의 독립은 근본적으로 법관의 입장에서 보면 남에게서 주어진다거나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면보다 스스로 전취하여야 한다. 법에 의한 법의 수호자로서의 의연하고도 순교자적인 사명감과 용기에 의하여 지켜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사회여론(언론자유)에의 뒷받침과 국민의 신뢰는 물론 헌법적인 보장이 절실하다. 사법의 독립을 위하여 법관의 직무상 독립, 법관인사행정의 독립은 개헌작업에 관한 여론이 확립되었다 할 것인데 사법의 독립은 법관의 직무상의 독립이 요점인 만큼 법관으로 하여금 오로지 양심과 법률에 의하여서만 재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문제다.

<사법부에 예산 편성권을>
그러므로 법관의 임면이 행정부에 의하여 전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보다 법관의 직무에 관하여 불이익이나 심리적 구속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요긴하다. 법관이 그 의사에 반하여 전직되지 않도록 한다던가, 정식으로 임명된 법관이 정년까지 법관으로 재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현재의 10년 임기제를 철폐할 필요가 있다(법관의 종신제는 서독 기본법 97조).
사법부가 행정부로부터의 예산탄압을 방어하기 위하여 사법부의 고유권으로서 예산 편성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데(미국은 판례법으로 인정, 서독은 독일헌법연방재판소의 경우 성문법으로 인정됨) 이 점에 동조하는 개헌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음 사법정책관계에 있어서는 법원조직법에 관한 한 서독의 연방헌법재판소의 경우처럼 법원의 독자적인 법안 작성권을 인정해야할 것이고 현행 대법원 규칙제정권(헌법 106조)의 범위를 사법부 소관 민사법시행에 관한 사항까지 확대 재조정함이 바람직하다.
앞에서와 같은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뒷받침 아래 법관의 청렴결백·공정무사한 직무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신뢰할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법을 통한 양심의 소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