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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통일 소박 없는 대박론은 통일 도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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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는 한 손이 없다. 그런데 그 사용하지 않는 한 손은 상대보다 훨씬 강하다. 추동력과 파괴력이 있고 그 파급효과도 매우 클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잘 보이지 않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에는 상대와 비슷한 정도의 힘만 가진 손, 즉 군사, 외교에 대한 전문가는 있지만 그 막강한 다른 손까지 사용할 줄 아는 책사, 경제 일반과 북한 경제에 탁견을 가진 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현 정부의 5년은 이명박 정부의 5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사회주의 정권이 변할 수 있는 기간은 정권 초기 5년 남짓이기 때문이다. 1977년 복권된 덩샤오핑은 78년 중국의 체제이행을 시작했으며 81년부터 보다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를 시작한 것도 그때이며 그로부터 5년 뒤인 90년 소련은 해체되기 시작했다. 반면 56년 권력을 잡은 헝가리의 카다르가 10년 뒤 시작한 시장사회주의는 급진성이 결여된 현상 유지책에 불과했다. 독재 기간이 길어질수록 독재자의 현상 유지 성향은 현저히 커진다. 이제 김정은 정권 초기 5년의 절반가량이 지난 북한의 변화를 위해 남은 기간은 불과 2년 반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기간마저 조심스러운 잔걸음 행보로만 보낼 것인가.

 이대로 가면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손익계산서에는 적자만 쌓일 것이다. 5·24 조치 결과 혜택은 중국 기업이, 피해는 한국 기업이 보고 있지만 북한은 큰 손해가 없다. 이전에는 한국 기업이 중국 내 한국계 기업을 통해 북한에 하청을 주어 의류를 가공 생산, 국내에 판매했지만 5·24 조치 때문에 지금은 중국 기업에 하청을 준다. 그런데 이 중국 기업은 인건비를 절약하고자 북한에 하청을 주고 물건을 받은 다음, 원산지만 중국산으로 바꿔 한국 시장에 보낸다. 이와 유사한 거래는 수산물에서도 일어난다. 서해에서 북한 배로부터 수산물을 넘겨받은 중국 기업은 그 일부를 중국산으로 둔갑시켜 한국에 판매한다. 5·24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 기업이 북한으로부터 수입하는 비(非)지하자원 물품 50%의 최종 소비지는 한국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통일 대박은 점진적인 경제 통합의 결과가 축적돼야 가능하다. 통일 대박론의 단초가 된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추정할 때 필자는 다음의 엄격한 가정을 했다. 즉 북한의 체제이행과 남북 경제 통합이 심화된 후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통일대로(大路)가 생기려면 그 전에 한국의 월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많은 통일소로(小路)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북한의 경제규모는 시장환율 기준 1인당 국민소득 600달러 정도이며 광주광역시 지역총생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북한 정권의 경제 이해 능력은 2009년 화폐개혁을 경제 정책이라고 내놓는 수준이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국과 북한의 엄연한 이 실력 차이를 이용하지 못한 채 안보나 외교의 팔만 가지고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틈을 노려 일본은 대북 외교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도 북한 문제를 자산 삼아 한국을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 한다. 외교를 넘어 우리의 국가적 딜레마만 커지는 형국이다.

 북한과의 경제교류는 북한의 시장활동을 증가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대부분의 경제교류는 시장활동을 자극할 것이다. 자본주의 바람을 겹겹이 차단하는 장치를 마련한 개성공단도 북한 시장에서 최고 인기 품목인 초코파이 돌풍의 진원지가 되었다. 시장경제가 러시아의 미래임을 역설해 대통령이 된 옐친을 열렬히 지지한 러시아 국민은 서양의 청바지와 스타킹을 암시장에서 구입하고 금지된 비틀스 음반을 구해 들으며 자랐던 사회주의 내의 우파(右派)들이었다. 북한에도 무역과 시장을 통해 눈을 뜨는 평양 시장경제파들이 생겨나야 한다.

 한국의 대북정책은 과감하고 스마트해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그동안 대북 정책을 망쳐왔던 이념과 국내 정치로부터 훨씬 자유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로 끝난다면 통일 대박도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민간이 주도하는 통일 소(小)박 없이 통일 대박만 바라는 통일론은 통일 도박과 마찬가지다. 15일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가 보이지 않는 손의 혜안을 가지고 통일을 대박으로 만들 수 있는 대북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 약력 :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부원장, 미국비교경제학회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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