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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보이스피싱 조직 … 한 명은 월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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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탈북자들이 보이스피싱과 마약 밀매를 하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 중 한 명은 조직 내에 다툼이 일어나자 월북했다. 이를 놓고 탈북자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08년 탈북한 이모(27·구속)씨는 한국에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전전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들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씨는 중국에 있는 조선족 천모(수배)씨가 한국인 개인정보를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소문 끝에 2012년 11월 중국 장시(江西)성의 식당에서 천씨를 만났다. 이씨는 500만원을 주고 개인정보 600만 건을 넘겨받았다. 학생들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집전화 등이 기록된 컴퓨터 파일이었다. 해커들이 국내 432개 동영상 강의 사이트 등에서 빼낸 것이었다.

 이씨는 귀국해 알고 지내는 탈북자들을 모았다. 이씨와 함께 처음부터 보이스피싱을 모의한 박모(33·수배)씨가 총책을 맡았다. 이들은 장시성에 사무실을 차리고 지난해 3월부터 지난 3월까지 보이스피싱을 했다. “자녀가 다쳤는데 보호하고 있다”거나 “자녀를 납치했다”고 하는 수법을 썼다. 이런 방법으로 38명에게서 5억원을 받아 냈다.

압수한 보이스 피싱 매뉴얼 자료 사진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 읽어 가며 보이스피싱을 했다. 경찰은 매뉴얼대로 보이스피싱을 하려다 실패한 녹음 파일을 입수했다. 조직원이 “아이가 머리를 다쳤다”고 하자 전화 너머에서 영남 사투리를 쓰는 중년 여성이 “뭐라캅니꺼(무슨 소리냐). 지금 안방에서 디비(누워) 자는데”라고 답했다. 조직원은 욕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음성 파일은 joongang.co.kr).

 이들은 올 초 보이스피싱에서 챙긴 돈으로 중국에서 필로폰 70g, 2억1000만원어치를 국내에 들여와 판매했다. 이들의 범행은 총책 박씨가 제3자를 통해 경찰에 제보함으로써 알려지게 됐다. 박씨는 수익금 분배 문제로 조직 내에 갈등이 생겨 일당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자 경찰에 알렸다. 박씨는 현재 경찰을 피해 중국에 도피 중이다.

 보이스피싱은 탈북자 7명과 조선족 2명이 했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들 중 처음 범행을 구상한 탈북자 이씨 등 3명을 구속, 1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총책 박씨와 중국에 있는 조선족 등 4명을 수배했다.

 자금 인출책 중 한 명인 탈북자 이모(28)씨는 지난해 4월 월북했다. 연평도에서 꽃게잡이배 어부로 위장 취업해 일주일간 일하다 배를 훔쳐 달아났다. 탈북자 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통일부 관계자는 “한국에 온 뒤 5년 동안은 매주 한 차례 경찰과 지방자치단체가 방문 면담을 하도록 돼 있다”며 “하지만 탈북자들이 감시받는다고 싫어해 실제로는 매주 접촉이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조직이 통장을 만들도록 명의를 빌려 준 한국인 김모(19)군 등 9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밀수한 필로폰을 팔거나 투약한 탈북자 11명 역시 사법 처리됐다.

부산=김상진 기자,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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