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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자아의 성실한 추구|송긍주의 『앵벌이…』|고통속의 아름다운 소망 그려|서동훈의 『풀잎…』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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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0년대」라는 말로 그성격이 규정되었던 우리 시대의 문학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셈이다. 문학이 추구하는 정신의 자유로움이 상상력의 한계를 고집하는 외부적 상황앞에서 좌절의 시련을 체험하게 된것은 비단 이 시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중문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예술을 빙자하여 버젓이 행세하는 저속한 통속물들이 인간의 삶과 그조건에 대한 자기통찰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는 문학의 세계에 위세와 압력으로 등장하게된 사회적 상황은 앞으로 더욱 외면하기 어려운 과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80년대」라는 또하나의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지만 문학은 여전히 이러한 시대적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 없으며,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삶의 정신을 창조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80년대 소설의 방향 문제를 염두에 둘 경우 이달의 소설들 중에서 우선 서동훈의 『풀잎 그늘 밑에서】(세계의 문학·겨울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의 소설다움을 언어에 대한 세련된 감각을 통해 형상화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소설이 주제의식의 질곡에서 벗어날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 작품속의 주인공이 추구하고 있는 정신적 안위와 아름다운 소망은 현실속에서 겪게되는 육체적 곤욕을 통해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지만 작가는 결코 삶의 어려움이나 그 모순을 격한 어조로 비난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아름다운 소망 그 자체의 순수함과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 마음의 아름다움이 감각적 언어와 서정적인 문체를 통해 살아난다. 이 작가에게 있어서 문체는 단순한 언어적 기교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주제를 놓고 그 내면을 새밀하게 통찰하며 표현하는 능동적인 수법에 해당된다. 그리고 우리말에 대한 꾸준한 천착과 뛰어난 언어적 직관에 의해 성립된 젓이다. 작가 서동훈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와 문체가 소설이 요구하는 산문정신에서 벗어나고 있는 듯한 현란함과 서정성을 짙게 깔고 있으면서도 장식적인 수사를 넘어서고 있는 것은 인간의 삶을 포용하는 뜨거운 애착과 신뢰감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때문이다.
송긍주의 『앵벌이의 꽃잠』(문학사상)은 자아에 대한 진실한 추구작업과 연결된다. 잃어버린 자기 존재의 뿌리와 경험과 기억속에서 사라져버린 과거를 되찾으려는 주인공의 집요한 노력을 통하여 우리는 책임있는 도덕적 존재로서 새 시대를 살아야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설의 줄거리는 거지시절의 왕초와 고아원 시절의 원장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근본과 희미한 과거를 캐어내는 자기추적의 과정이 그 전부이지만 작가는 주인공이 습관처럼 틈틈이 그려내며 종이로 접어만드는 온갖 새들의 형상을 통해 현실에 대한 추상화 작업을 병행하는 특이한 수법을 보여 주기도 한다. 이야기의 사이사이에 끼어 드는 새에 대한 단면적인 생각들은 삶의 자유로움과 그 근원에 대한 끊임없는 향수와 통한다. 그리고 고향을 찾아나서는 주인공의 집념과도 연결된다.
우리는 이소설에서 자기존재의 뿌리를 찾아내는 과정 그 자체보다도 자기존재를 확인한 후의 주인공의 삶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환상과 관능의 수법을 통해 삶의 현실에 접근하고 있는 이진우의 『진눈깨비』(문학사상),지극히 작위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속물적인 인간들의 모습과 세태를 희화적으로 그러내고 있는 김성일의 『귀신놀이』 (한국문학), 그리고 일상적인 삶의 주변에서 인간 존재의 진실한 의미를 놓치지 않고 있는 이순의 『우리들의 아이―아들④』(문예중앙·겨울호) 등에서 우리는 인간의 삶에 대한 소설적 형상화의 가능성을 다시한번 확인하게된다.

<문학평론가·덕성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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