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일은 학교에 맡겨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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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며칠전부터 김옥길 이대 명예총장이 장관물망에 으르자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절대 안할겁니다" 하는편과 "아마 꼭 할거요" 로 확연히 나누어졌었다.
막상 문교장관으로 발표되자 주변에선 "웬일일까?" 걱정하는 사람이 더 많았고 기자들까지도 혹시 망설이지 않았느냐고 물었는데 그는"내가 하고싶어서 했지. " 간단하게 대답했다.
해방이후 세번째 여성 장관이라는 관심보다는 그에게 우선'대학' 문제가 급하다.
"왜 한숨을 쉬어요? 앞일이 막막해 보이시유? 하하-" 여전히 여유있게 앞자리 손님에게 농담도하고 자주 활짝 웃는다.
14일 저녁 내내 이대후문 앞 그의 2층집 응접실에서 언제나 처럼 짧은 머리, 짧은치마·저고리차림으로 국내외기자와 축하손님들을 맞았다. 정의숙 이대총장도 "이제 진짜 어렵게됐다"면서 그와 축하의 악수를 했다.
항상 그는 질문보다 대답을 짧게 한다.
"학교 일은 학교에 맡겨야지"문교부장관으로서의 포부를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할 것 없는 것이 장관이요"
한번 아니다하면 안 하는 성격. 이대 총장시절 주변에서 그의 문집출판을 몰래 준비한 적이 있었다.
평소 '책은 내지 않겠다' 고 해왔기 때문에 신문·잡지에 실린 그의 글들을 챙겨 출판사에서 조판을 끝내고 마지막 견본으로 '허가'를 얻으려고 했다. 그는 출판사에 "그 동안의 모든 경비는 내가 낼테니 도로 갖고 오시오"해서 다된 책을 거둬들였다.(김옥길 박사의 책으로는 번역서 "예수의 생애와 교훈" 한권 뿐이다) . "하려면 선선히 하지." 그는 이번 문교 장관 교섭 때 '단번에 응낙했다'고 밝혀 어떤 '소신'을 비쳤다."그 동안 대학에 있으면서 '자유를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왔어요. " 누구보다 책임과 질서를 강조하고 약속은 꼭 지켜야한다는 것을 신조로 삼아왔다는 김장관은 문교부는 각급 학교를 행정적으로 돕는 것이지, 뭘 명령하는데가 아니라고 못박는다.
건국 후 첫 여성 장관이었던 고임영신박사는 48년 상공장관에 취임하니 어느 부하가 "어떻게 여자 밑에서 일할 수 있겠느냐" 며 사표를 내버려 '권위' 문제로 두고두고 화을 냈었다.
이제 30여년 지나 장관이 된 여성, 김박사는"하달이니 '지시'니 하는 그런 군대식 어려운 말 쓰지맙시다""직원들 줄서서 기다릴 필요없어요" "접견'은 또 뭐요?"하면서 미리 찾아온 문교들부하들에게 그 '권위'를 오히려 없애라고 손을 내젓는다.
아마 그는 지난 30년간의 한국여성교육의 결과라고 그 변모를 실명할 것이다.
그를 오랫동안 모셔왔던 총장시절 비서들은 김박사의 그런 대범함 때문에 앞으로 문교부 사람들이 오히려 고생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 도무지 격식을 싫어한다.
더우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벌써부터'프랑스' 의 전보건상'시몬·베유'여사('유럽'의회의장)처럼 김장관이 어쩌면'내각속의 유일한 남성이 될 소지가 크다고 짚고 있다. <윤호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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