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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작업실] '악동이' 만화가 이희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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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악동이에요. 3층짜리 다가구 주택 옥탑방이라 그리 화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창문 열면 불암산이 손짓하는 서울 상계동 저희 집에 오신 모든 분들, 환영합니다. 저의 탄생에는 사연이 있어요.

여러분들을 처음 뵌 것이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이 창간되고 얼마 안돼서였잖아요. 당시 아버지(만화가 이희재.51)는 이 잡지에 창작 만화를 연재하고 싶었지만, 아직 내세울 만한 캐릭터가 없다는 이유로 세계 명작을 만화로 그리는 일을 하셔야 했대요.

그래서 시작한 작품이 빅토리아 빅터라는 소설가의 '악동일기'라는 작품이었죠. 하지만 도중에 꾀를 내셨어요. 주인공 악동이는 그대로 가고 내용은 소설과 전혀 다른, 재미있는 얘기로 바꿔가신 거였어요.

네? 어린 녀석이 왜 늘 머리가 까까머리냐고요? 사회에 불만 있냐고요? 히히. 그건 아니고요, 원래는 숱이 좀 있었는데 없는 게 그리기 편한 것 같아 까까머리를 만드셨대요.

요즘 아버지는 기분이 아주 좋으세요. 왜냐고요? 몇년 전에 그리신 만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엊그제 아주 멋진 양장본으로 나왔거든요. 조금 있으면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아홉살 인생'도 곧 나올 예정이래요. 게다가 지난해 여름 완간한 10권짜리 '만화-이문열 삼국지'시리즈 판매가 곧 1백만권을 돌파한대요.

많은 분들이 제가 나오는 만화를 '리얼리즘 만화'라고 하잖아요.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세요. "어린이에게 웃음을 주는 만화는 많다. 하지만 어른들도 함께 보면서 때로 눈물 지을 수 있는 만화는 별로 없다. 난 그런 성인(成人)만화를 그리고 싶다"라고요.

전남 완도에서 그림 잘 그린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아버지는 서울로 올라오신 뒤 '심술통' 이정문 선생님과 김종래 선생님의 문하생 생활을 잠시 하시다가 결국 혼자 그림 공부를 하셨어요. "모든 것을 소화한 뒤 모두 버리고 자기만의 그림체를 가져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만화가론이세요.

요즘엔 단편 몇 개를 구상하고 계세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에게 밥을 해드리기 위해 쌀 한 말을 지고 1백리를 걸어온 일곱살 소녀 얘기하고요, 거울 속에서 사는 '방울이'라는 어린이의 모험담이에요. 저도 나오냐고요. 좀 나오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얘기 좀 해주세요. 그럼 안녕.

글.사진=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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