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외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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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외교」의 상식가운데 「치외법권」이라는 것이 있다. 외교용어로는「엑스테리토리알리테」(Exterritorialite)라고 한다. 원어의 문자대로 「영토외」란 뜻. 따라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특정 외국인이 그 라의 통치권이나 재판할권 또는 행정권의 행사를 모면할 수 있는 특권.
이것은 관습국제법에 따른 것으로 외교사절·원수·군대·군함 등에 적용된다. 외교사절은 그 주재국에서 재판권·과세권·경찰권의 관할대상에서 면제되고 또한 그 거주·사무실의 불가침이 보장된다. 사절이외의 외교관과 그 가족도 마찬가지다.
종래는 이런 특권이 나라사이의 조약에 따랐으나 지금은 관습법에 마라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근년인 196l년의 『「외교관계에 관한「빈」회의』에서도 그것은 거듭 확인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런 특권은「아이러니컬」하게도 외교사절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명」을 부여하고 있다. 상대국의 내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이 그것이다. 어느 나라나 외교사절과 본국 사이에는 암호문이 따로 있어서 이에따라 중요한 정보들이 끊임없이 타전되고 있다.
소련당국은「모스크바」의 미국대사관에 전파탐지장치까지 설치, 미국의 빈축을 산 일도 있었다. 바로 소련의 외교사절들도 세계적으로 공인된「스파이」나 다름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 소련의 외교사절들이 빈번히 축출되고 있는 것은 그런 마찰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슨 극비도 아니며 또 기이한 일도 아니다. 다만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사실 어느나라의 사절이나 그런 일은 거의 의무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요즘 미국·「이란」사이의 심각한 긴장과 분쟁도 그 표면적인 명분은 「이란」내의 미국대사관이 『간첩활동을 했다』는데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촌스러운 명분에 지나지 않는것도 같다.
내난선동이나 국가전복의 증거가 없는 한, 외교사절에게 간찹의 누명을 씌워 인질로 삼는 것은 과히 신사적인 방법은 아니다. 소련마저도 미국을 두둔하고 나서는 것은 더욱 흥미있는 일이다.
어떤 정치평논가들은 요즘엔 대사는 없고 「중사」「소사」만 있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강대국사이엔「하트·라인」(긴급전화)이 있고 정상회담마저 빈번해 대사의 역할은 실제로 「중」이나「소」의 사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이란」사태는 다시금 세계외교의 관행에 먹칠을 한 셈이다. 대사직의 전락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외교」의필요성, 그 자체까지도 부인되는 듯한 인상이다. 세계외교의 위기를 맞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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