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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먹은 힘 다해 험산 40㎞ 끌려다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그 동안 4차례인가 옮겨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밤을 이용했다.
내가 잘 걷는다는 소문에 지나가는 마을의 남녀노소가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보는 듯 몰려나와 나를 구경했으며 부녀자들은 혀를 끌끌차며 안됐다는 식의 동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두목 「와타리」는 나에게는 일체 몸값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풀려 나오기 3일 전에 그는 호되게 열병으로 신음했다. 그러나 동료들이 산닭 2마리를 그의 품에 안겨주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악귀를 쫓아내는 그들의 전통적 습속이었는데 「와타리」가 산 닭을 품자 열이 상당히 내려가 아주 신기했다.
내가 우리 식으로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주려고 하자 그가 놀라 멈칫했다.
그렇게 해서 열을 약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몇 번 그렇게 해주자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나에게 물수건을 얹어달라고 졸라댔다.
「필리핀」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그들은 모두「고고」음악에 미쳐있는 것 같았다.
3번째 옮긴 거처에서 「라디오」가 「고고」음악을 내보내자 그들은 남녀노소 없이 「고고」음악에 맞춰 몸을 비틀며 광란하는 춤을 추었다.
「와타리」의 부하들 중 몇몇은 「디스코」춤을 추기 위해 밤중에 「일리간」시에 나가 부둣가 「투루」라는 「디스코」춤추는 곳에서 밤을 새고 오기도 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라나오」호 주위의 험한 산중으로 대나무 숲이 빽빽이 들어서 밀림을 이루었고 군데군데 「바나나」숲으로 덮여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들이 조금만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먹고사는데는 걱정할 것이 없을 것으로 보였다.
이곳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타잔」영화에서나 보는 칡넝쿨이 「타잔」처럼 타고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회교교 반도들은 이 험한 산중에서도 「민다나오」섬의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수시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그들은 나를 구출하기 위해 작전 중에 있는 제26보병여단의 병력 이동을 샅샅이 알고 그에 따라서 은신처를 옮기고 있었다.
내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했다는 것과 「사우디」운전면허증을 갖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큰 덕을 보았다.
같은 회교도들일 뿐만 아니라 「사우디」와 「리비아」「말레이지아」등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우디」말로 인사를 하자 그들은 아주 호감을 보였다.
나는 그 동안 40여㎞정도 걸은 것 같다.
나는 오직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 때문에 젖 먹은 힘을 다해 따라 걸었지만 그들은 맨발로도 나는 듯이 잘 걸었다.
그들은 맨발이기 때문에 발을 다쳐 피가 흘러도 조금도 게의치 않았다.
대부분의 젊은 청년들이 일정한 직업 없이 빈둥거리며 놀고 있었다.
직업이 없으니까 자연히 돈이 귀하고 외국인들이나 중국인들을 납치해서 몸값을 받아내 한동안에 흥청망청 써 버리는 무절제한 생활이었다.
산에서 심은 옥수수를 내다 팔아 주식인 쌀을 사는 것 같았다.
반찬은 비린내나는 생선 또는 닭을 장조림 비슷하게 짜게 만들어 갖다주었지만 원래 비위가 약한 나는 먹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살기 위해서는 체력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그같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 봤다.
나중에는 통조림 된 땅콩빵을 사다주거나 「아지노모또」(조미료)를 사와서 닭국물에 넣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닭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양이 충분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닭 한 마리를 잡으면 수십 명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와 같이 납치된 「필리핀」 자동차부속품「세일즈맨」「마카리오」씨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마카리오」씨가 납치범들과 나 사이의 언어의 「갭」을 메워주었기 때문이다.
회교도 반도들은 거의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좀 한다해도 그들 식의 특유한 발음으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마카리오」씨라고 해서 그들의 방언을 모두 다 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다행히 반도들 중에 한 사람이 「가까리오」씨가 쓰는 「타갈로그」어를 약간 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영어로 말하면 그가 천천히 「타갈로그」어로 통역해 주어 그런 대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회교들은 밥을 멱을 때 젓가락이나 숫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손가락을 사용했으며, 나도 처음 3일 동안은 그렇게 했다.
그러다가 나무 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혹 기념이 될까해서 풀려날 때 가지고 왔다.
내가 용변을 보러 갈 때도 범인들 2∼3명이 몇 발짝 떨어져 감시를 했는데 변소가 따로 없어 쪼그리고 앉는 곳이 바로 변소이다.
용변을 보는 도중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종의 무기를 보고 그들의 민첩한 행동을 대했을 때 많은 「필리핀」군인들이 죽어갔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이 소곤소곤 할 때마다 나에게 불리한 정보가 들어온 것이나 아닌가 하고 소름이 쪽쪽 끼쳤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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