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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논문 검증,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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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2006년, 우리 국민은 졸지에 논문에 관한 상식을 넓혔다.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이 터진 데 이어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교육부총리로 임용됐다가 연구부정 시비에 휘말려 스스로 물러났다. 김 교수는 논문으로 낙마한 첫 고위 공직자가 된다. 당시 야당(현 새누리당)의 공세 초점은 두 가지였다. 그가 대학원생의 박사논문을 베껴 학술지에 연구논문을 냈으며, 국민대·한양대 논문집 두 곳에 비슷한 연구결과를 실어 자기표절을 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부인했지만 여론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정도로 거칠게 돌아간 상태였다. 결국 청문회 형식의 국회 상임위원회 소집을 자청해 관련 의혹을 소명한 뒤 곧바로 사퇴했다. 소명 요지는 이랬다.

 ‘당시 대학원생은 50대의 교직원이고, 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0대 신진 학자였다. 대학원생은 1984년에 발표한 내 박사논문의 틀을 바탕으로 88년 2월 학위를 받았다. 나는 내 박사논문의 연장선에서 이보다 몇 개월 앞선 87년 11월에 학회에 논문을 제출, 발표까지 마쳤다. 그런데 학회지가 88년 하반기에 인쇄돼 나오면서 마치 내가 대학원생 논문을 표절한 것처럼 오도된 것이다. 자기표절에 대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기준이 다르다.’

 그의 소명이 모두 맞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공직 적격성 여부를 따지는 데 과도한 잣대가 동원된 것만큼은 틀림 없다. 이후 그 잣대는 다른 공직자를 검증하는 데 적용됐다. 연구계의 윤리 시비가 공직 부적격자를 가리는 기준으로 굳어진 것이다. 정권교체 이후 여야 입장이 바뀌면서 김 교수를 낙마시킨 새누리당은 야당의 검증 공세가 과하다고 불평할 처지가 못 됐다. 어느덧 논문은 능력·자질·병역·재산보다 더 엄격한 검증기준으로 떠올랐다.

 남의 아이디어를 베끼는 행위나 제자논문에 이름을 끼워넣는 무임승차는 지적(知的) 절도다. 앞으로도 검증받아야 할 부정행위다. 다만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과도하고 불분명하다면 부작용이 생긴다. 과거 학계는 지금보다 온정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2006년에 국내 주요 학회 40곳의 표절기준을 조사해본 적이 있다. 4곳만 연구부정 행위에 관한 규정을 갖고 있었다. 그나마 제재 규정까지 명문화한 곳은 행정학회가 유일했다. 잘못된 관행은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현재 기준으로 과거를 모두 재단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최근 몇몇 학회이사와 만나 논문검증의 원칙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를 통해 세 가지의 느슨한 검증원칙은 세울 수 있었다. ①90년대 후반 이전의 논문에는 지금의 표절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인용누락 같은 형식적 표절에 죄의식이 희박했고 세세한 표절기준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②자기표절·중복게재는 무조건 표절로 몰아선 안 된다. 대학·학회에 따라 이를 허용하는 곳도 많다. ③공동저자 무임승차는 상습 정도를 따진다. 1 저자, 2 저자는 연구자 간 실질적 기여에 따라 따져야 할 내밀한 문제지만 상습적으로 제자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면 문제다.

 이번 국회 청문회에서도 논문 소지자 모두가 모조리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위의 ‘삼(三)원칙’에 따라 판단하면 이기권(노동부)·정종섭(안전행정부)의 논문은 문제가 없어 보인다. 김명수(사회부총리)의 경우 연구부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공직 후보의 연구부정은 가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면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 설사 그 사람이 임용되더라도 부도덕의 낙인이 찍혀 공직활동에 지장을 받는다. ‘김병준 케이스’ 이후 매번 벌어지는 논문검증 공방은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정치권·언론에서 제기되는 연구부정 의혹을 제3의 전문기구에서 판정하는 등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은 어떨까. 김 교수는 말한다. “논문 검증이 과도하면 멀쩡한 인재까지 잡는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