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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빠지게 웃고 싶나요? 아산 코미디홀 가보세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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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면

1. 아산 코미디홀 무대에 서는 신인 개그맨들이 코미디홀 상징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주보규·김상우·김향화·김인직·기현주·김대한·남태부·유재필·엄태경씨 2. 아산 코미디홀 전시장 3. 아산 코미디홀 전경.

공연이 끝난 후 박수를 치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습니다. 슬픈 공연이었냐고요? 아니요. 너무 많이 웃다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여고 동창생이라는 60대 여성 세 분도 공연이 무척이나 즐거웠던 모양입니다.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우리 아들·딸보다 낫다”고 답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실컷 웃었습니다. 그렇게 웃고 나니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고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좀 더 빨리 와 볼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눈물겹도록 웃게 해준 이들을 얼른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들에게 궁금한 게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글=장찬우 기자·윤현주 객원기자 , 사진=채원상 기자

지난 4월 3일 아산시 도고면에 코미디홀이 생겼습니다. 쓸모없어진 농협창고 부지에 코미디 전시관과 공연장이 들어선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9명의 ‘웃기는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습니다. 개그맨 엄태경(36)씨와 8명의 신인 개그맨이 바로 그들입니다.

신인 개그맨들에게 공연 기회 제공

KBS 16기 공채 개그맨인 엄씨는 코미디홀을 책임지는 극장장입니다. 신인 개그맨들과 함께 이곳에 상주하며 아이디어를 짜고, 신인들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 극장장은 분명 얼마 전까지 KBS ‘개그 콘서트’에서 활동하던 현역 개그맨 아닙니까? 그런데 코미디홀에 상주하다니요?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라 방송을 쉬면 타격이 클 텐데 말입니다. 엄 극장장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사실 저희 개그맨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너무 없습니다. 방송은 지극히 한정돼 있고 대학로 무대 또한 그리 넓지 않아요. 개그맨을 꿈꾸는 이가 많지만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고요. 그래서 개그맨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엄 극장장은 ‘웃기고 싶어서 안달 난’ 개그맨 지망생들과 함께 아산행을 감행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인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엄 극장장과 함께하고 있는 8명의 신인 개그맨은 개성이 뚜렷합니다. 그리고 개성만큼이나 사연도 제각각입니다. 아프리카TV에서 ‘감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김인직(25)씨는 시청자가 하루 4000명에 달하는 인기 BJ(Broadcasting Jockey)였습니다. 수입도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개그맨이 되고 싶어 열혈 팬들에게 "개그맨이 돼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방송을 접었습니다.

 남태부(22)씨는 연기자 출신입니다. 여섯 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해 아산에 오기 전까지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습니다. 네이버 검색창에 이름을 쓰면 ‘영화배우’라고 검색됩니다. 그러나 남씨는 연기력을 바탕으로 하는 개그맨이 되고 싶어 아산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슈퍼스타K5’에 출연해 ‘걸스데이 멜통령’으로 인기를 얻은 유재필(23)씨는 연예인이 아닌 개그맨이 되고 싶어 쉬운 길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가 포기한 것들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개그맨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루 24시간 중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은 ‘어떻게 하면 더 웃길까?’만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

5월 1일 첫 공연을 시작하고 지금까지 이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관객 수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단 네 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합니다. 적은 관객 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관객 중 군대 가는 아들을 보기 위해 미국에서 왔다는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연을 듣고 나서 괜히 뭉클했어요.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공연했죠. 그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더 큰 걸 받았어요. 10만원을 저희 손에 쥐어 주면서 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개그맨이 돼 달라 하셨거든요.”

 김상우(26)씨와 기현주(23·여)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코끝이 찡해 옵니다. 두 사람은 아직 부모님께 자신이 하는 일을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평범하고 안정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자신들의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처음은 좀 놀라시겠지만 이내 응원해 주실 거라 믿어요.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죠.”

웃음은 가장 강력한 바이러스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말을 참 많이 합니다. 그래서 코미디홀 개그맨들은 더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고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는 말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웃음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이지요.

 웃을 일이 없고, 뭐 하나 신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한 번쯤 가족·친구와 함께 아산 코미디홀 나들이를 권하고 싶습니다. 아, 너무 웃다 보면 배꼽이 빠질 수도 있으니 배꼽 꼭 잡고 공연 관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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