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사이를 거닐며 중세를 느낀다…|국제판화작가전 수상-김영태(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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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 서울대학교 자리 「마로니에」거리에 자리잡은 미술회관은 그리 높지 않은 벽돌 건물인데 이상하게 친근감을 더해 준다. 며칠 전에도 나는 본관3층에 자리잡은 자료실에 가서 「비디오·테이프」로 『「캐나다」국립「발레」단』의 두 무용수가 2인무를 추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관람하기도 했는데, 아무튼 거대한 상자의 변형 같은 유리창도 크고 층계가 완만한 이 벽돌 건물을 찾을 때마다 중세 교회를 방문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국제판화선작전은 미술회관 l,2용에 여유가 없을 정도로 촘촘히 전시되어 있었다. 세계 유수의 판화작가작품을 선정해서 초빙한 기획전이 아니라 국내에 소장하고있는 작품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출품한 명단을 봐도 대개 알만한 이름들인 것이 화가·만화가·화랑의 대표들이기 때문이다.
「뷔페」의 작품은 원색 석판화나 동판보다 「드라이·포인트」기법의 「단테상」이 「뷔페」답다. 『「뷔페」답다』라는 것은 그의 가늘고 굵은 검은 선들이 장식미보다는 마치 창칼처럼 우리의 폐부를 모질게 도려내고 있다는 병적인 신음과 불안한 시선의 얼어붙음 같은 차가움을 의미한다.
「달리」의 소품 2점은 가재 콧수염을 기르고 요리책을 낼만한 미식가이자 바위에 엿가래처럼 늘어진 시계를 그리던 왕년의 초현실주의자의 광기답지 않게 창을 든 기사들이나「신곡」연작인 듯한 동판도 범작수준을 못 벗어나는 듯 했다.
「돈·키호테」같은 그의 기질을 익히 인정하고 있는 관람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토비아스」의 『꿈의 무도회』같은 장면은 무척 달콤하고 따뜻하다.
어딘가 공중놀이들이「샤갈」냄새를 풍겨주기도 하지마는 나는 「케말」이란 「유고슬라비아」 판화가의 『공간』이란 작품을 보고 머리칼 무늬 옆의 여백에 작은 충격을 받기도 했고 「후그」의 『우는 사람』과 「잔티리니」의 『광대』가 그렇게 슬프게『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같아서 도래 한 자리에 서서 있어야 했다.
「이케다·마쓰오」(지전만수부)의 『달』도 지상의 풀잎들이, 흐느낌이, 마음의 축축함을 남겼는데 7점이나 출품된 「마리니」의 『가족』『무희』는 눈을 끈다.
색칠한 무희보다 흰 바탕이 음악의 「리듬」으로 점령된, 나타나는 곡선과 그 풋풋한 탄력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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