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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감성마케팅 전성시대…사실은 노예마케팅?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 국내 중견제약사 7년차 영업사원 김성현(가명·38)는 요즘 인형탈을 들고 병원을 다닌다. 예전보다 병원을 방문하는 횟수도 늘었다. 그는 인천에서 소아과 의원 영업을 담당한다. 병원을 찾는 손님인 어린이의 눈길을 사로잡아 마케팅 차별화에 나서는 것. 인형탈을 쓰고 병원을 찾으면 아이들이 달려와 사진을 찍고 따라다니며 좋아한다. 제품 설명을 위해 만난 의사도 수고했다며 반갑게 그를 맞이한다.

# 다국적제약사 4년차 영업사원 박근호(가명·34)씨는 매주 일요일 오전이 제일 바쁘다. 자신이 담당하는 대학병원 교수의 집을 찾아가 세차를 하기 위해서다. 그가 담당하는 교수는 병원 주차장이 부족해 항상 야외에 차를 세운다. 한 주동안 더러워진 담당 교수의 차를 청소하기 위해서다. 비싼 외제차인 탓에 흠집이 생길까 인근 세차장에서 손으로 세차를 한다. 매주 제대로 쉬지 못해 몸은 곤하지만 마음은 즐겁다. 한 번이라도 교수의 얼굴을 더 보면서 매출을 끌어 올릴 수 있어서다.

9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의약품 감성 영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번 달부터 시행하는 리베이트 투아웃제도 때문이다.

리베이트 투아웃제는 1년 안에 두 번 이상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되면 건강보험급여 목록에서 삭제하는 제도다. 급여 의약품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내 의약품 시장환경을 고려하면 사실상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급여목록에서 제외되면 하루아침에 수십억원 혹은 수백억원의 매출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며 "정부가 지속적인 약가인하로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급여목록에서 제외되면 회사 문을 닫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제약업계에서 의약품 판매를 위해 금품을 제공하는 대신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 영업'을 확대하고 있다. 위험부담이 낮고 적은 비용으로 매출을 높일 수 있어 요즘 중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감성 영업의 첫 단계는 얼굴 도장 찍기다. 일단 병의원을 방문하는 횟수를 크게 늘린다. 자주 보면 익숙해져 병원 처방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전략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회사 제품의 강점을 소개하면서 감성에 호소한다. 리베이트 투아웃제로 뒷돈을 건넬 수 없는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병원 문턱이 닳도록 자주 얼굴 도장을 찍으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학술 마케팅도 강화하는 추세다. 리베이트 없이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제품을 설명할 수 있어서다. 주로 서울 대형병원보다는 규모가 작은 지역 중소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B제약사 관계자는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병의원은 서울 대형병원보다 최신 의료기술이나 학술정보가 늦다"며 "정보를 갖고 찾아가면 아무래도 도움이 되니깐 영업사원에게 마케팅에 활용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몸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주말에도 출근해 의사의 운전기사를 자청하는 식이다. 골프장까지 데려다준고 라운딩이 끝날 때까지 주변에서 기다리다가 집으로 다시 모셔가는 식이다. C제약회사 관계자는 "운전대를 맡긴다는 것은 그만큼 영업사원을 신뢰한다는 것"이라며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면 주말에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병원 고참 간호사나 사무장 등 2인자에게 다가서 원장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도록 주변인을 공략하기도 한다. 유학·학원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감성 마케팅은 일종의 노예 마케팅일 뿐 실제 성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지적에서다. D제약사 관계자는 "말이 좋아 감성 영업이지 사실상 노예나 다름 없다"며 "그렇다고 그저그런 감성 마케팅은 매출 실적에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몸만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이런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영업사원도 늘고있다. 자존심을 버리고 감성영업에 주력해도 매출 실적은 달라지지 않는데 회사 실적압박은 높아져서다. E제약사 관계자는 "의사 한명에게 한 품목당 20~30곳에서 치열하게 경쟁한다. 다들 비슷한 감성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어 선택을 받는 것이 힘들다. 좀 괜찮은 마케팅 프로그램은 비용이 들어 진행이 힘들고 결국 더 몸으로 때울 수 밖에 없다"며 "답이 보이지 않아 주변에서도 떠나는 영업사원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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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미 기자 byjun3005@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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