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박재동 만화가·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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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동영상은 joongang.co.kr [최효정 기자]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1954~ ) ‘흔들리며 피는 꽃’

이 시를 처음 듣고, ‘도종환, 너 글 하나 썼네!’ 감탄했다. 1970~80년대 시가 사회상과 함께 가던 시절에 내 가슴을 친 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한마디로 나를 울렸다. 일간지에서 시사만화를 그리며 늘 옳은 길로만 가는 척, 정의파인 양 어깨에 힘을 줬지만 나도 유혹에 약한 인간이었고 비겁하고 나약한 소시민이었다. 한없이 약해질 때 중얼거리며 다시 힘을 얻는 시, 목이 탈 때 얻어먹은 물 한 바가지 같은 시, 힘겨울 때 어깨를 두드려주는 이 시가 나는 좋다.

요즘은 시가 너무 어려워서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시어가 가슴에 오지 않아서 시인들 스스로 소외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불필요한 증오가 부글거리는 지금 이 땅에 가장 필요한 건 모두의 마음을 녹여주는 시 한 편이 아닐까. 너나 나나 ‘흔들리는 꽃’ ‘젖은 삶’임을 돌아본다면 조금 수월하게 이 난세를 이겨나갈 수 있지 않을까.

박재동 만화가·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